한남루는 남한산성 행궁의 정문에 해당하는 누각입니다. 정조 22년(1798)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누문으로 세웠습니다. 1890년대에  프랑스 영사 프랑뎅이 찍은 사진이 현재 유일한 한남루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으며, 1909년 일제가 행궁을 파괴할 때 없어졌다가 프랑뎅의 사진을 보고 2011년에 복원하였습니다.

 

※ 사진자료는 경기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청 등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행궁의 정문인 한남루에 대해서만 알아보겠습니다.

 

▼ 남한산성에 있는 여러 누정이 있는 위치를 표시한 지도입니다. 한남루는 행궁의 정면에 있습니다

 

▼ 남한산성 행궁은 입장료가 있습니다만, 경기도민은 무료라고 합니다.

 

▼ 참고로 남한산성 행궁의 배치도를 보겠습니다. 행궁을 처음 만들때는 인조4년(1626)에 건립되었으며, 이때는 행궁의 정문이 외삼문이었으나, 정조 22년(1798)에 광주유수 홍억이 행궁의 위엄을 더 하고자 2층으로 된 누각을 지으면서 한남루라고 하였습니다.

 

▼ 행궁(行宮)은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행궁이라 하는데, 남한산성 행궁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습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행궁에서 47일간 머물렀고,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여주의 영릉(세종,효종)의 능행길에 다녀오면서 이용하였습니다.

 

남한산성 행궁은 1909년까지 잘 남아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고, 1999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행궁을 복원 준공하였습니다.  2011년에는 한남루가 복원되었습니다.

 

▼ 1890년대에 프랑스 영사 프랑뎅이 찍은 사진으로 알려진 사진으로 한남루의 1900년대 이전의 유일한 사진이라고 합니다.

 

▼ 조선시대에 왕의 피란 및 행차때 묶을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 지방에 여러 행궁을 지었는데, 행궁 중에 누각으로 된 문은 수원화성의 신풍루와 남한산성의 한남루가 있습니다. 
왼쪽이 남한산성행궁의 한남루이고 오른쪽이 수원화성의 화성행궁 신풍루입니다

 

 

▼ 자료사진으로 남한산성행궁을 보겠습니다. 행궁은 전체적으로 장방형으로 배치가 되었는데, 나중에 만든 한남루는 지형 때문에 비스듬히 지었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야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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