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들이 봐도 수원화성의 모든것이 아름답게 보였는지 사진엽서로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조선명소, 또는 수원명소라는 이름으로 화성의 건물이 찍힌 엽서가 발행이 되었는데,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나서 관광사업을 목적으로 엽서를 만들었고, 그 일부가 박물관에 유물로 보관되어 있어서, 자료를 인용하여 올려보았습니다. 사진을 찍은 시기에 관계없이 수원화성의 장소별로 묶어서 올렸습니다.

 

- 사진은 국립민속박물관 / 부산시립박물관 / 수원광교박물관 / 블로그 산사애인 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장안문[국립민속박물관] ; 옹성과 성곽의 일부가 무너지기는 했지만 대체로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장안문[수원광교박물관]

 

장안문[부산시립박물관]

 

시기는 가늠 할 수 없지만 1900년대로 봅니다. 성곽이나 문루의 상태가 좋아 보입니다.[출처 산사애인]

 

다음은 일제강점기 초기(1910년대)로 보이는 팔달문과 일본인들입니다. 옹성문이 아직 그대로 입니다[부산시립박물관]

 

왼쪽에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는데, 일제강점기 초기때의 사진입니다.

 

팔달문[국립민속박물관], 발행원 수원청광당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청광당은 엽서를 인쇄한 인쇄소 입니다.

 

팔달문의 1920년대로 보이는 사진입니다

 

팔달문의 1920년대 입니다 [출처 산사애인]

 

인터넷 서핑하면서 구한 팔달문의 자료사진들입니다.

 

1905년경 팔달문의 사진입니다. 아직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지 않아서 그런지 일본상점들이 보이지 않습니다[출처 산사애인]

 

▼ 팔달문 성밖의 상가 사진이 자주 등장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수원의 전통적인 상가지역입니다. 왼쪽의 상가를 보면 슬레이트 지붕이 보이는데, 아마도 1920년대가 아닌가 싶습니다.[출처 산사애인]

 

팔달문의 옹성루가 없어지고 상가에 일본상가의 모습이 보이는데, 아마도 1915년 이후인것 같습니다. [출처 산사애인]

 

1910년 팔달문 성안의 상가 모습니다. 오른쪽에 상점간판을 잘 보면 청광당서점 이라는 간판이 보이는데, 수원명소 엽서에서 보면 청광당인쇄 문구가 자주 보이는 것으로 봐서 여기서 엽서가 인쇄된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출처 산사애인]

 

▼ 대체로 시기를 추정해 보면 1930년이후인 것 같습니다. 상가의 지붕이 모두 슬레이트나 기외지붕으로 바뀌었습니다.[출처 산사애인]

 

▼ 1920년대의 팔달문 [출처 산사애인]

 

팔달문의 성곽이 헐리기전의 1929년전의 모습인듯 합니다. 오른쪽에 수원군청이라는 설명이 있는 사진입니다.[출처 산사애인]

 

일제강점기대의 사진을 찾다 보면 의외로 팔달산 주변의 성곽의 사진을 아주 귀합니다. 이 사진은 선남암문인데, 화성의 암문중에 유일하게 포사가 있었던 암문이었습니다. 이문 안쪽으로 가면 아름다운 서남각루(화양루)가 있습니다.[출처 산사애인]

 

아래의 3장의 사진은 비슷한 시기에 찍은것으로 보이는 창룡문입니다[국립민속박물관]

 

창룡문의 유리건판 사진입니다만, 사진을 찍은 시기는 모르겠으나, 위의 사진 2장과 시기가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출처 산사애인]

 

연무대[국립민속박물관]

 

봉돈[수원광교박물관]

 

화서문과 서북공심돈[부산시립박물관] 일제강점기때인데, 컬러사진인듯이 보이지만, 사진에 채색을 한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엽서의 설명에 잘못된 부분이 있는데, 수원 연무대부근이 아니고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입니다.

 

화서문밖에서 보는 모습이네, 전체적으로 많이 허물어져 보입니다. 일제 강점기 1910~1920년대 로 추정됩니다.

 

서문 안쪽에서 찍은 유리건판 사진입니다. 대체로 깨끄솬 모습입니다. 일제 강점기 1910년로 짐작이 됩니다.[출처 산사애인]

 

성곽이 그대로 있고 여장은 일부 무너졌지만 대체로 안정된 느낌의 환상적인 조합의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입니다.[국립민속박물관]

 

조선민요라는 제목의 엽서인데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의 모습과 봄나물을 뜯는 3명의 부녀자의 사진이 들어 있습니다.[국립민속박물관]

 

대구시장과 수원의 화홍문, 방화수류정의 사진을 넣어서 만든 엽서인데, 벼의 이삭은 컬러로 처리한 특이한 엽서입니다[부산시립박물관]

 

구한말의 화홍문의 여러 사진들 입니다.

 

북동포루에서 바라보는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입니다. 북동포루 앞에는 논이 있었는데, 6.25 한국전쟁때는 피나민촌이 있었고, 지금은 일부 주차장으로 사용중입니다.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는 화홍문의 사진입니다. 화홍문가운데에 조선여인이 사진을 찍는 모델처럼 자세를 잡고 있습니다[국립미속박물관]

 

화홍문[국립민속박물관]

 

이 사진은 수원에 주둔한 조선수원경비대라는 정규 부대가 화홍문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고 있습니다(1908년)는 조선의병들과 한차례 전투를 벌였다고 합니다[국립민속박물관]

 

위의 화홍문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은 조선수원수비대의 수원주둔지의 모습입니다만, 장소는 알 수 없습니다

 

화홍문[부산시립박물관] 사진을 보면 일본인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듯이 보이는데, 왼쪽의 조선아이들이 앉아서 쳐다보는 모습입니다.

 

화홍문[부산시립박물관]

 

방화수류정[수원광교박물관]

 

방화수류정[국립민속박물관]

 

다음은 화성행궁의 사신인데, 엽서로 발행된 사진이 아닌것도 있습니다. 시기는 일제강저기 입니다.

 

화성행궁-수원군청으로 쓰인 낙남헌(조선총독부, 1929년, 생활생태조사 수원군)-[출처 산사애인]

 

화령전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입니다.

 

화령전의 내삼문입니다.[출처 산사애인]

 

화령전 운한각에 일본군인들이 서 있습니다. 사진 윗쪽에 희미하게 우체국 소인이 찍 있습니다[개인소장-출처 산사애인]

 

정조의 어진이 봉안된 화령전 운한각 입니다.[출처 산사애인]

 

화령전 운한각[부산시립박물관]

 

화령전의 운한각 내부사진이라는 문자가 있습니다.

 

화령전내의 운한각옆의 이아 일본경찰-경성지방법원수원지청[부산시립박물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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