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들이 봐도 수원화성의 모든것이 아름답게 보였는지 사진엽서로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조선명소, 또는 수원명소라는 이름으로 화성의 건물이 찍힌 엽서가 발행이 되었는데,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나서 관광사업을 목적으로 엽서를 만들었고, 그 일부가 박물관에 유물로 보관되어 있어서, 자료를 인용하여 올려보았습니다. 사진을 찍은 시기에 관계없이 수원화성의 장소별로 묶어서 올렸습니다.
- 사진은 국립민속박물관 / 부산시립박물관 / 수원광교박물관 / 블로그 산사애인 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장안문[국립민속박물관] ; 옹성과 성곽의 일부가 무너지기는 했지만 대체로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 장안문[수원광교박물관]
▼ 장안문[부산시립박물관]
▼ 시기는 가늠 할 수 없지만 1900년대로 봅니다. 성곽이나 문루의 상태가 좋아 보입니다.[출처 산사애인]
▼ 다음은 일제강점기 초기(1910년대)로 보이는 팔달문과 일본인들입니다. 옹성문이 아직 그대로 입니다[부산시립박물관]
▼ 왼쪽에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는데, 일제강점기 초기때의 사진입니다.
▼ 팔달문[국립민속박물관], 발행원 수원청광당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청광당은 엽서를 인쇄한 인쇄소 입니다.
▼ 팔달문의 1920년대로 보이는 사진입니다
▼ 팔달문의 1920년대 입니다 [출처 산사애인]
▼ 인터넷 서핑하면서 구한 팔달문의 자료사진들입니다.
▼ 1905년경 팔달문의 사진입니다. 아직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지 않아서 그런지 일본상점들이 보이지 않습니다[출처 산사애인]
▼ 팔달문 성밖의 상가 사진이 자주 등장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수원의 전통적인 상가지역입니다. 왼쪽의 상가를 보면 슬레이트 지붕이 보이는데, 아마도 1920년대가 아닌가 싶습니다.[출처 산사애인]
▼ 팔달문의 옹성루가 없어지고 상가에 일본상가의 모습이 보이는데, 아마도 1915년 이후인것 같습니다. [출처 산사애인]
▼ 1910년 팔달문 성안의 상가 모습니다. 오른쪽에 상점간판을 잘 보면 청광당서점 이라는 간판이 보이는데, 수원명소 엽서에서 보면 청광당인쇄 문구가 자주 보이는 것으로 봐서 여기서 엽서가 인쇄된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출처 산사애인]
▼ 대체로 시기를 추정해 보면 1930년이후인 것 같습니다. 상가의 지붕이 모두 슬레이트나 기외지붕으로 바뀌었습니다.[출처 산사애인]
▼ 1920년대의 팔달문 [출처 산사애인]
▼ 팔달문의 성곽이 헐리기전의 1929년전의 모습인듯 합니다. 오른쪽에 수원군청이라는 설명이 있는 사진입니다.[출처 산사애인]
▼ 일제강점기대의 사진을 찾다 보면 의외로 팔달산 주변의 성곽의 사진을 아주 귀합니다. 이 사진은 선남암문인데, 화성의 암문중에 유일하게 포사가 있었던 암문이었습니다. 이문 안쪽으로 가면 아름다운 서남각루(화양루)가 있습니다.[출처 산사애인]
▼ 아래의 3장의 사진은 비슷한 시기에 찍은것으로 보이는 창룡문입니다[국립민속박물관]
▼ 창룡문의 유리건판 사진입니다만, 사진을 찍은 시기는 모르겠으나, 위의 사진 2장과 시기가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출처 산사애인]
▼ 연무대[국립민속박물관]
▼ 봉돈[수원광교박물관]
▼ 화서문과 서북공심돈[부산시립박물관] 일제강점기때인데, 컬러사진인듯이 보이지만, 사진에 채색을 한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엽서의 설명에 잘못된 부분이 있는데, 수원 연무대부근이 아니고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입니다.
▼ 화서문밖에서 보는 모습이네, 전체적으로 많이 허물어져 보입니다. 일제 강점기 1910~1920년대 로 추정됩니다.
▼ 화서문 안쪽에서 찍은 유리건판 사진입니다. 대체로 깨끄솬 모습입니다. 일제 강점기 1910년로 짐작이 됩니다.[출처 산사애인]
▼ 성곽이 그대로 있고 여장은 일부 무너졌지만 대체로 안정된 느낌의 환상적인 조합의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입니다.[국립민속박물관]
▼ 조선민요라는 제목의 엽서인데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의 모습과 봄나물을 뜯는 3명의 부녀자의 사진이 들어 있습니다.[국립민속박물관]
▼ 대구시장과 수원의 화홍문, 방화수류정의 사진을 넣어서 만든 엽서인데, 벼의 이삭은 컬러로 처리한 특이한 엽서입니다[부산시립박물관]
▼ 구한말의 화홍문의 여러 사진들 입니다.
▼ 북동포루에서 바라보는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입니다. 북동포루 앞에는 논이 있었는데, 6.25 한국전쟁때는 피나민촌이 있었고, 지금은 일부 주차장으로 사용중입니다.
▼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는 화홍문의 사진입니다. 화홍문가운데에 조선여인이 사진을 찍는 모델처럼 자세를 잡고 있습니다[국립미속박물관]
▼ 화홍문[국립민속박물관]
▼ 이 사진은 수원에 주둔한 조선수원경비대라는 정규 부대가 화홍문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고 있습니다(1908년)는 조선의병들과 한차례 전투를 벌였다고 합니다[국립민속박물관]
▼ 위의 화홍문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은 조선수원수비대의 수원주둔지의 모습입니다만, 장소는 알 수 없습니다
▼ 화홍문[부산시립박물관] 사진을 보면 일본인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듯이 보이는데, 왼쪽의 조선아이들이 앉아서 쳐다보는 모습입니다.
▼ 화홍문[부산시립박물관]
▼ 방화수류정[수원광교박물관]
▼ 방화수류정[국립민속박물관]
▼ 다음은 화성행궁의 사신인데, 엽서로 발행된 사진이 아닌것도 있습니다. 시기는 일제강저기 입니다.
▼ 화성행궁-수원군청으로 쓰인 낙남헌(조선총독부, 1929년, 생활생태조사 수원군)-[출처 산사애인]
▼ 화령전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입니다.
▼ 화령전의 내삼문입니다.[출처 산사애인]
▼ 화령전 운한각에 일본군인들이 서 있습니다. 사진 윗쪽에 희미하게 우체국 소인이 찍 있습니다[개인소장-출처 산사애인]
▼ 정조의 어진이 봉안된 화령전 운한각 입니다.[출처 산사애인]
▼ 화령전 운한각[부산시립박물관]
▼ 화령전의 운한각 내부사진이라는 문자가 있습니다.
▼ 화령전내의 운한각옆의 이아 일본경찰-경성지방법원수원지청[부산시립박물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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