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고향인 수원의 옛날 옛적의 모습은 어땧을까? 하고 여러곳의 박물관을 서핑하면서 자료사진을 구해서 보고 있습니다.
주로 박물관에서 사진을 구하고 있는데, 외국인들이 찍어서 기증하여 주신 사진들이 있거나, 일본제국의 조선통독부에서 문화수탈을 목적으로 찍은 사진들도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와 한국전쟁 전/후의 사진들을 모아서 볼 때 마다 이런 사진들이 이렇게 나마 남아 있어서 무척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과, 기록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해준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선 수원의 화성박물관에서 구한 수원의 옛날사진들을 모아서 올려보았습니다. 시기는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 1950~1960년대의 흑백사진들입니다.
- 아래의 사진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팔달산에서 수원시내의 사진을 연속적으로 3장을 찍었는데, 팔달문을 기준으로 북쪽으로 한장, 남쪽으로 한장, 중동사거리에서 동수원 방향으로 한장, 이렇게 3장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장소는 팔달산 서남각루(화양루)아래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이 되며, 오른쪽에 보이는 팔달문의 지붕이 살짝 보이고 동북쪽으로 연무대가 보입니다-(1954년~1962년)
▼ 팔달문에서 남쪽방향으로 현재의 남문시장과 지동시장등을 담은 사진입니다(1954년~1962년)
▼ 현재 중동사거리에서 동수원방향으로 찍은 사진이며, 65년 정도 지난 지금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데, 현재 성빈센트 병원이 있는곳은 1950년대에는 과수원 밭처럼 보입니다.(1954년~1962년)
▼ 방화수류정의 여러 사진들이 있는데, 용연에서 올려다 보는 사진들입니다. 자세히 보면 건너편에서도 어린애들이 낚시를 하고 있습니다.(1955년대)
▼ 1956년대에 찍은 방화수류정의 모습입니다. 방화수류정의 여장을 보면 허물어진 상태로 보이는데, 정작 방화수류정은 멀쩡 하기만 합니다.
▼ 전쟁직후 겨울의 화홍문입니다. 비록 여장은 무너졌지만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대로 입니다(1955년~1958년)
▼ 여름때인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비가 많이 온 후에 찍은 사진으로 7개의 수문에서 쏟아지는 물이 장관입니다.(1958~1964)
▼ 성곽에서 바라보는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입니다. 두 건물의 조화가 가히 환상적입니다.
▼ 마을 사람들의 공동 빨래터였던 화홍문의 밖의 하천 모습입니다. 저희들의 어머니, 누나들의 모습입니다(1950년대)
▼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아마도 전쟁후에 태어난 아이들로 보이는데 내 또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 화홍문 아래의 빨래터에서 포대기에 동생을 업고 있는 언니의 모습을 보니 아련한 추억이 하나둘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옛날에는 큰딸이 동생이 있으면 엄마 대신 포대기에 업고 다녔습니다.(1958년~1964년)
▼ 수원천의 모습입니다. 사진을 찍은 위치는 지금의 영동사거리 수원교에서 못골시장 방향으로 찍은 사진인듯 싶습니다
▼ 다음은 1956년대의 동장대(연무대)의 모습들입니다. 방화수류정이 보이고, 그 뒤로는 숙지산이 보입니다.
▼ 정면에서 보는 모습인데, 가운데에 현판이 없습니다. "연무대"라는 현판이 일제 강점기때도 있었는데, 한국전쟁때 없어진듯 합니다.
▼ 연무대에서 활을 쏘는 놀이를 하고 있는 어른들 주위로 아이들이 구경을 하고 있는데, 어린애를 들쳐업은 남자 학생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 연무대와 동북공심돈의 모습입니다.
▼ 동북공심돈의 모습입니다. 일제강점기에도 버티던 화성의 구조물들은 유엔군의 폭격에 일부가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 유엔군(호주공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장안문의 사진들입니다. 전쟁중에는 장안문의 성루가 반쯤 파괴되었으나, 전쟁후에는 성루를 모두 헐어 버린듯 합니다. 북한군의 탱크에 폭격과 기총사격으로 파괴 시킬때 가까이 있던 옹성의 외벽은 벌집이 되었습니다.(1963년~1964년)
▼ 1963년~1964년에 찍은 팔달문의 사진들입니다. 팔달문의 장안문에 비헤서 거의 온전한 모습입니다.
▼ 한국전쟁 직후의 화서문의 모습입니다.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의 농토를 보면서 옛날 생각에 잠깁니다.(1963년~1964년)
▼ 화서문옆의 서북공심돈의 모습은 전쟁중에 포탄을 마지 않아서 온전한 모습 그대로 입니다.
▼ 여장은 허물어지고 성벽위에서 뛰어 다니면서 놀고 있는 어린애들의 모습은 암울했던 한국전쟁 직후의 모습과는 달리 밝기만 합니다. 성벽아래까지 논이 있었고, 사진으로 볼때 모내기 끝나고 한달정도 지난 시점으로 6월 정도로 보입니다.
▼ 성벽 아래의 논에는 논갈이 중이거나 이미 모를 낸 논도 보이는 모습입니다. 지금은 장안공원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 봉돈의 모습인데, 봉돈은 일제강점기때의 사진을 봐도 훼손 상태가 심했습니다(1950년대)
▼ 창룡문도 폭격을 맞아서 문루의 형체는 없어졌습니다.
▼ 창룡문과 달리 멀리 보이는 연무대는 온전한 모습입니다.
▼ 서호(축만제)의 여수로와 다리의 모습입니다.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데, 예전의 서호는 참 아름다웠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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