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서호는 1794년(정조 18년) 수원 화성을 쌓을 때 함께 축조된 호수이며, 축만제(祝萬堤)라고 정조가 이름을 지었습니다. 수원 화성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서호라고 하였으며, 옛날에는 낙조()가 아름다웠습니다.

 

예전에는 화서역을 중심으로해서 철로 좌우로 저수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현재의 저수지만 남아있습니다.지금의 화서2동 사무소(08년12월 꽃뫼버들마을로 이전) 주위와 연초제조창 정문앞 지역까지 넓은 지역(옛지명은 고양골)이 예전에는 물고가 많이 나왔던 저수지였지만, 어르신들이 고기를 잡아서 그냥 회로 많이 드셔서 간디스토마 때문에 많은 분들이 일찍 돌아가시거나 고생하신분들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나도 민물고기회(가물치)를 한번 먹어본적이 있는데 그 맛이 바다고기에 비할바가 아니었으나, 그놈의 간디스토마 때문에..

 

서호는 농촌진흥청의 실습답()을 비롯하여 수원평야 논에 논물을 공급하였으나 최근에는 폐수 유입으로 많이 오염되었으며, 1990년경 호수 바닥을 준설할 때 만든 인공섬이 특히 아름답습니다.

 

호수의 둘레가 약 2Km인데 근방의 주민들의 산책로겸 조깅코스로 아주 인기가 좋고, 농촌진흥청 방향으로는 여기산(공원)이 있는데 왜가리가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 왜가리가 황새들이 여기산에 많이 서식하였던 관계로 황새말이라는 지명이 생겨 낳는데 그곳이 현재 예전의 수원 천천2동지역(현재 천천아파트지역에서 부터 여기산공원앞까지)을 황새말(황새마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지역이 아파트지역으로 바뀌면서 수원시에서 행정편의상 그지역 전체의 지명을 "꽃뫼버들마을"이라고 지었는데 정확한 지명은 아닙니다. 다행이 LG-APT앞 공원을 최근에 "황새말공원"으로 해주기는 했습니다.

※ 천천2동의 예전 지명은 점터,황새말로 불려졌으며 현재 행정구역은 율천동으로 되어있습니다

 

지금 그지역은 전부 아파트단지로 바뀌었으나, 예전에는 전부 논으로된 평야지대였는데 항상 왜가리가 많이 날아다녔습니다.천천동(泉川洞 : 우리말로는 샘내이다)동의 지명유래는 다음에 또 알아볼 기회가 있을것입니다.

 

예전의 천천1동(지금의 선경화학앞)에는 하보,중보,상보라는 아주 커다란 샘이 있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메워졌는데 참 아쉽습니다.

 

▼ 농진청 앞 산책로 인데 그래도 좌우로  꽃과 나무가 늘어서 있어서 산책하기가 그만입니다

 

▼ 물은 많이 오염 됬으나 보기에는 시원하기만 합니다

 

▼ 간간히 왜가리가 날아다니는것이 보입니다.

 

▼ 수원도 급격히 도시화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고층 아파트가 많아졌습니다. 팔달산이 아파트에 가려져 안보입니다

 

▼ 둑(제방)에 늘어서 있는 소나무가 방죽의 멋을 한층 더해줍니다

 

▼ 항미정()이다. 서호를 조망하기에는 썩 좋은 자리인데 지금은 나무들에 가려져 잘 안보입니다.

 

▼ 농촌진흥청인데.  식량주권을 위하여 한번더 힘을 내주기를 바랍니다.

 

▼ 저멀리 팔달산 정상 우측능선에 서장대가 보입니다(화재로 인하여 가림막이가 되어 있다-현재는 완전복구 상태)

 

▼ 둑에 서있는 멋드러진 소나무

 

 ▼ 예전에 서호의 물을 빼고 토사를 준설해서 만든 인공섬으로서 왜가리의 쉼터로서는 그만인것 같습니다

 

▼ 둑방길

 

▼ 둑방밑에 있는 실습답인데 여기서 각종벼의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축만제(서호) 밑에 조성한 논은 서둔(西屯)이며,정조가 직접 내탕금을 내서 조성한 그당시 최신식의 경지정리된 논이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지금의 만석공원(만석거) 밑에는 대유둔이라는 넓다란 평야가 있었습니다

 

▼ 제방에서 바라본 실습답(畓)

 

▼ 제방에서 발본 실습답(畓)

 

▼ 인공섬 방향

 

▼ 둑방길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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