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는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국보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白磁 鐵畵葡萄猿文 壺) / 조선 / 높이 30.8cm / 본관2029
조선 후기 철화백자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걸작품이다. 몸통 전면에는 여백의 미를 살려 포도넝쿨과 원숭이를 나타냈다. 철화 안료가 짙게 설채(設彩)됨으로 인해, 발색이 강해지면서 약간씩 번지거나 뭉그러져 섬세한 묘사가 드러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철화 안료의 깊고 진중한 색과 온화한 유백색 바탕 그리고 능란한 구도가 함께 어울려 원숙한 세련미를 드러내고 있다.


백자 청화 투각 모란무늬 필통(白磁靑畵透彫牧丹文筆筒) / 조선 / 남산359
이 필통은 청화백자로 만들어 진 것이다. 입구부분이 몸통에 비해서 넓은 형태를 띠고 있고, 몸통은 둥근 원통형이다. 입구와 몸통의 연결부위에는 꽃무늬가 나타나고 있다. 

몸통 전체를 돌아가며 모란이 큼직큼직하게 투각되어 있다. 필통의 아래 부분에는 안상과 둥근 구멍이 번갈아 가며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중국의 당나라 이후 모란꽃은 번영 창성과 미호(美好)와 행복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모란은 부귀 길상의 상징물로도 받아 들여졌다. 꽃 중의 왕이라고 불리며 부귀와 아름다움 인생의 행복을 상징하는 무늬다_문화포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백자 청화 투각 포도무늬 지통(白磁靑畵透刻葡萄文紙筒) / 조선 / 높이 15.8cm, 입지름 15.7cm / 동원186
이 지통(紙筒)은 입 부분이 바깥쪽으로 벌어졌으며 몸체는 그보다 좁아져 똑바로 내려오다가 굽 부분에 이르러 다시 벌어지는 형태이다. 몸체 위와 아래에는 넓은 띠 모양의 여백을 두고 윗부분에는 칠보 무늬를, 아랫부분에는 넝쿨무늬를 청화 장식하였다. 

중앙에는 투각기법으로 포도 넝쿨을 표현했는데, 특히 포도 알갱이를 청화 안료로 칠해 돋보이도록 하였다. 유색은 옅은 청백색이며, 청화 안료의 발색이 어두운 편이다. 굽 주위의 유약을 닦아내고 내화토를 받쳐 구웠다.


백자 청화 풀꽃무늬 항아리(白磁靑畵草花文壺) / 조선 / 높이 16.8cm, 입지름 10.2cm / 수정133
전체적인 인상이 늦가을 잘 익은 둥근 호박을 닮았다. 풍만한 둥근 몸체는 아가리에서 굽까지 길게 음각선을 그어내려 면을 나누었고 각각 면에는 난초, 여뀌, 패랭이 등 주변의 익숙한 식물 무늬를 그려 넣어 한국적인 정취를 살렸다.


백자 청화 난초무늬 항아리(白磁靑畵蘭草文壺) / 조선 / 높이 26.2cm, 입지름 12.7cm / 동원415
청화백자(靑畫白磁)는 청화 안료로 백자 위에 문양을 표현하는 백자이다. 전란 이후 국가 경제가 회복되자, 질 좋은 자기를 생산하는 분원(分院)이 정비되면서 백자 생산의 재도약의 시기를 맞이했다. 

18세기에는 문인 취향의 문양으로 장식한 청화백자가 제작되었다. 난초 문양은 18세기 청화백자에 처음 사용되는 문양이다.


백자 철화 난초무늬 팔각병(白磁靑畵蘭草文角甁) / 조선 / 높이 41.1cm, 입지름 5.9cm / 동원415
몸체의 표면이 여덟 면으로 각이 진 각병이다. 이런 형ㅌ채의 병은 조선 중기(17세기~18세기 중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조선 후기로 갈수록 몸통이 좀더 불룩해지는 형태로 변화한다.

우윳빛의 기면(器面)에 옅은 청화 안료로 난초와 풀꽃들을 그려 넣었다. 가는 붓선으로 전체적으로 여백을 많이 두어 간결하게 무늬를 그려 넣는 방식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부흥을 맞은 조선 중기 청화백자의 특징이다. 

이러한 문양 표현의 각병은 달항아리와 더불어 경기도 광주 금사리(金沙里) 관요에서 주로 만들었다고 본다. 굽은 안바닥을 얕게 깎았으며 접지면과 안바작의 유약을 닦아내고 모래받침을 받쳐 구워낸 흔적이 있다.


백자 청화 대나무 연꽃 국화 분재무늬 항아리(白磁靑華竹蓮菊花盆栽文壺) / 남산486
몸체의 어깨부분이 풍부하게 벌어져 전체적으로 양감이 있는 안정된 형태이다. 몸체의 윗면에 도안화된 여의두무늬가 보조적으로 있고, 중심에는 각종 초화가 식재된 분재를 자유롭게 청화로 시문하였다. 이처럼 분재를 소재로 제작된 청화백자는 조선 후기에 유행하였는데, 특히 18세기 후반 이후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이 항아리는 몸체 세 곳에 청화로 대나무와 연꽃, 국화 분재를 그렸다. 괴석과 식물, 화분과 탁자까지 갖춰 하나의 감상물로 완벽한 구성을 하고 있다.

조선 후기 이후 유행한 분재의 애호취미가 백자에 반영된 것으로 당시 회화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으며, 결국 이를 소비했던 수요자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겠다. 청화백자를 사용하는 계층이 경제력을 확보한 중인과 상인 등 도시민으로 확대되어 문양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동시에 이러한 항아리 자체가 하나의 완물로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시가 쓰여진 백자 청화 항아리(白磁靑畵壺) / 조선 / 높이 30.9cm, 입지름 13.6cm / 덕수4109
別范安成(별범안성) : 범안성과 이별하며

-沈約(심약) : 중국 南北朝 시대 梁나라 사람,시부에 뛰어남

生平少年日(생평소년일) 살아오며 평소의 젊었던 날엔
分手易前期(분수이전기) 작별에 덤덤히 앞날 기약했지
及爾同衰暮(급이동쇠모) 나나 자네나 늘그막에 이르니
非復別離時(비복별리시) 다시금 이별자리 오지 않겠지
勿言一樽酒(물언일준주) 한 동이만 이라고 말하지 말게
明日難重持(명일난중지) 내일이면 다시 들기 어렵다네
夢中不識路(몽중불식로) 꿈에서도 만날길 알지 못하면
何以慰相思(하이위상사) 무엇으로 그리운 마음 달랠까


 

시가 쓰인 백자 대나무무늬 연적(白磁靑畵竹文詩銘硯滴) / 조선 / 높이 8.5cm, 너비 11.9cm / 신수645
팔각면으로 된 몸체에 윗면은 대나무를, 측면은 장방형의 구획 안에 시를 써넣어 장식한 청화백자 연적입니다. 먹을 갈 때 사용하는 연적에 대한 감상을 담은 시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인 대나무를 배치해 격조 높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시 -
虛中受水(허중수수) : 속이 비어 물을 받아
而時出之(이시출지) : 때에 따라 그것을 내놓아
於無有用(어무유용) : 없는 듯 하지만 쓰임이 있으나
道基在慈(도기재자) : 도(선비의 도)가 아마도 여기에 있구나


시가 쓰여진 백자 청화 매화 무늬 각병 / 조선 / 높이 39.4cm, 입지름 7.7cm / 덕수1138
이 작품은 여덟 면으로 깎은 몸체의 앞뒤에 능화 형태의 창을 두고 매화 가지를 그려 문인의 기품이 돋보이는 병으로서, 도화서 화원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품격있는 장중한 형태의 빼어난 그림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으며, 양측에는 각각 '취리건곤(醉裡乾坤)', '호중일월(壶中日月)' 이라고 시가 쓰여 있는데요.

취리건곤(醉裡乾坤)
호중일월(壶中日月)

'술에 취하니 하늘과 땅이 크고 병 안에 해와 달이 가득하다'라는 뜻이랍니다.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白磁靑畵山水文壺) / 조선 / 높이 38.1cm, 입지름 13.6cm / 수정285
조선 왕실 자기를 굽던 관요에서 만들어진 백자 항아리로 몸체 양쪽 면에 능화모양의 창을 만들고 산수화를 그려 넣은 것이 특징이다. 

가을 밤 절벽 위에 인물과 멀리 둥팅 호(洞庭湖)에 떠오른 둥근 달을 그렸는데, 이러한 소상팔경이 능화모양 창 안에 한 폭의 산수화로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이며, 특히 관요에서 만들어진 백자에서 많이 나타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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