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군 양평읍의 갈산공원 정상에는 남한강을 바라보며 서 있는 정자가 있습니다. 지금은 나무가 많아서 남한강 물이 잘 안 보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사방이 훤히 보였을 것으로 보이는 영호정(英湖亭)입니다
▼ 주차장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서 숲길을 잠깐 올라갑니다.
▼ 산에 칡이 많아서 한문을 빌어서 갈산(葛山)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 영호정이 있는 곳은 양평읍사무소 뒤에 있는 갈산입니다. 편리하게도 차를 타고 갈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이 있고, 주차장도 있습니다
▼ 영호정으로 가는길에 보면 양평군(양근군+지평군)에서 3.1 운동이 일어난 지역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양평군(옛 지평군)은 조선 최초로 포수로 구성된 의병이 일어나 1097년대에 용문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던 의로운 고장입니다.
▼ 영호정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3칸+2칸의 정자입니다.
▼ 날아갈듯 한 지붕의 처마가 아주 낮게 보이는데,, 광각렌즈의 왜곡현상이 봐 줄만 합니다.
▼ 정자 안에서 내려다보는 남한강입니다만, 양평 사람들은 양강(楊江)이라고 하였습니다. 강이 나무에 가려서 이 정도로 보는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 영호정의 글씨는 조영기(趙永基) 선생이 썼다고 합니다_양평문화원 자료
▼ 다음은 양평문화원에서 인용한 영호정의 자료입니다.
『양근읍지(楊根邑誌)』「누대정관(樓臺亭觀);1899)」에 의하면 영호정은 조선시대에 객사의 서쪽 갈산 기슭 남한강변에 있던 “태허루(太虛樓)”라는 누각 아래에 관에서 석축을 하고 영호대(英湖臺)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영호대에는 나무 그늘이 있고 강물은 굽어 볼 수 있었고 그 아래 백여 명이 앉아서 한가롭게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그 후 돌보지 않아 폐허가 된 것을 1930년대에 들어 양근리에 거주하는 이범기(李範基)씨가 양평군의 유지들과 힘을 모아 갈산꼭대기에 정자를 건립하고 영호정이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일본인에 의해 그 자리에 신사가 세워지고, 영호정은 동편 능선으로 옮겨 짓게 되었으며 주인 없는 정자로 1945년에 이르러 붕괴되었다.
해방 후 1946년에 양근리에 거주하던 김연수씨가 중심이 되어 원래 신사 자리에 영호정을 다시 건립하였으나 6.25 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그 후 1991년 양평군청의 지원으로 현재의 영호정을 건립하게 되었다. 영호정의 제액은 조영기(趙永基)가 썼다.
영호정은 팔작지붕에 홑처마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장방형이며 네모진 주춧돌 위에 주심포의 기둥을 얹었고 내부는 누마루를 놓았다. - 양평문화원
▼ 정자주변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산뜻한 기분이 듭니다
▼ 영호정 동쪽으로 충혼탑이 있습니다.
▼ 원래의 충혼탑은 1968년 6월 6일 세워졌으나, 새로운 충혼탑이 세워지므로 해서 약간 뒤쪽에 물러나 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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