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정은 침괘정에서 수어장대 방향으로 약 250미터 정도 올라가는 소나무 숲길 옆에 있는 1칸짜리 정자입니다. 달이 뜰 때 달을 맞이 한다는 뜻의 정자이며, 1957년 전 경기도지사로서 적극적 친일파 이익흥(李益興)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익흥(李益興)은 일제강점기에 적극적 친일파로서 평안북도 박천경찰서장을 하면서 독립투사들을 체포, 고문, 학살했으며,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올랐던 아주 질이 좋지 않은 인물입니다.

 

▼ 영월정은 침과정(침괘정)에서 수어장대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 옆의 소나무 숲에 있습니다.

 

▼ 한칸짜리 정자로서 소나무 숲 속에 지어져 호젓한 맛은 나지만, 우리 눈 맛에 익숙한 나지막한 정자가 아닌 높다란 키를 가졌습니다

 

▼ 정자 안에는 의자가 없고, 또 올라가기도 불편하게 신발을 벗어야만 올라갈 수 있어서 그냥 포기합니다

 

▼ 현판은 원곡(原谷) 김기승(金基昇)이 썼으며, 丙申淸秋(병신청추)라고 하면 병신년(丙申年)은 1956년이며, 청추(淸秋)는 음력 8월을 말하는 뜻입니다. 곧 1956년 8월(음력)에 현판 글씨를 썼습니다.

그런데 영월정은 1957년에 완공하였다고 하는데, 현판 글씨는 미리 한해 전에 썼다는 것이 좀 아리송 합니다

 

▼ 여기서 경기도지사 시절에 영월정을 지었다는 이익흥(李益興)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 가야 하겠습니다.

- 자료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하였습니다(사진은 위키백과에서 인용)

한마디로 이익흥은 적극적 친일파이며,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박천경찰서장일 때 독립운동가를 체포.고문·학살했던 아주 질이 안좋은 인물이었습니다. 
이익흥의 이력을 보면 적극적 친일로서 일생을 호위호식하며 살았고 죽기전까지도 반성이 없이 권력에 기대어 살았으며,  경찰청장, 헌병사령관, 서울시경찰국장, 경기도지사, 내무부장관, 민의원등을 하였으며, 반민특위, 사사오입개헌, 내무부장관불신임안, 장면부통령저격사건에 관련된 인물이었습니다. 이력을 보면 능숙한 아부대마왕이었는지, 권력의 줄을 잘 타고 다녔습니다.
이익흥의 이력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에서 인용하여 년도별로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 1905년 3월 10일 평안북도 선천군 출생으로, 본관은 단양, 호는 겸산(兼山)이다.
- 1926년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
- 1931년 일본 마쓰야마고등학교[松山高等學校]를 졸업
- 1934년 큐슈제국대학교[九州帝國大學校] 법문학부를 졸업
- 귀국후 일제 하에서 평안북도 경찰국 경부와 평안북도 박천 경찰서장을 역임하였다.
- 1946년 1월 동대문 경찰서장, 그해 4월 중앙경찰청 경무감 대리, 9월 수도경찰청 부청장
- 1947년 8월 경기도 경찰청장, 1948년 9월 경상남도 경찰청장등 승승장구(乘勝長驅)하였다.
-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조사에 들어가자, 1949년 일제하 경찰 출신인 윤우경(尹宇景), 김정채(金貞彩), 전봉덕(田鳳德) 등과 함께 헌병대로 자원하였고, 당시 참모총장 채병덕(蔡秉德)과 헌병사령관인 원용덕(元容德)은 이들을 영관급 장교로 특채. 
- 1949년 제1사단 헌병대장,
- 1950년 대령으로 헌병부사령관 겸 서울헌병대장으로 진급
- 1950년 8월 대령으로 예편하고, 서울시 경찰국장으로 발령
- 1951년 6월 내무부 치안국장이 되었다. 
- 1952년 3월 서울시 부시장으로 선임되었으며, 
- 1953년 11월부터 1956년 5월까지 제4대 경기도지사
- 1956년 5월 제13대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그 해 지방의원 선거에서 야당계 입후보자에 대한 탄압 파동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되었다.
- 1956년 8월 국회에서 내무부장관 불신임 부결(찬성 86표, 반대 88표).
- 1956년 11월에 국회에서 두번째 내무부장관 불신임 부결
- 1957년 1월 국회에서 내무부장관 불신임-사표제출(2/3일)
- 1958 민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북5도 행정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회 지도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 1960년 4·19 혁명 후, 전 치안국장 김종원(金宗元)이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배후에 당시 내무부 장관 이익흥, 자유당 총무위원 임흥순(任興淳)이 개입되어있었음을 폭로하였고, 이들은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되어 1961년 3월 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63년 5·16 특사로 석방되었다.
- 1966년 원효여객 자동차 사장, 서울수산 이사
- 1971년 명지대학교 연구교수, 단양 이씨 대종회 회장 등으로 활동
- 1978년5월~1990년대 평화통일정책자문회 상임위원, 평화통일정책자문회 상임위원
- 1993년 11월 26일 88세로 사망
이상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2019년 12월 6일 경남지방경찰청은 역대 경남 경찰국장 중 친일인사로 지목된 인물은 노기주(2대)·이익흥(5대)·김종원(13대)·이정용(24대)의 회의실에 걸려 있던 사진을 떼어 냈고, 홈페이지에서도 삭제조치 하였습니다_한경신문

▼ 독립군을 체포.고문.학살한 친일파가 지은 정자를 굳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을까요? 

 

▼ 적극적인 친일로 일생을 권력에 기대어 호의호식하던 이익흥이 지은 영월정이 자꾸 맘에 걸리네요. 이제 수어장대 방향으로 길을 갑니다. 

 

▼ 길을  가다가 보면 취성암(取醒岩)의 자리라고 하는 표지석을 보게 됩니다만, 술이 취해서 바위에 앉으면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는 취성암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 [자료:경기도] 자료 사진을 보면 취성암이라고 쓰인 바위가 보이는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아마도 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없어진 듯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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