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주재 독일대사관 장교였던 헤르만 산더는 러-일전쟁의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1906~1907년사이에 한국과 만주를 여행하면서 일본인 사진사(나가노)를 고용하여 찍은 사진들이 있었는데, 100년후에 그의 손자 슈레판 산더가 대한민국과 관련된 사진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수원과 수원화성에 관련된 사진을 정해서 올려 보았습니다.

 

- 자료는 국립민속박물관/수원화성박물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이 사진은 정말 귀한 사진입니다. 일제에 의하여 팔달문 성곽이 해체되기 전의 사진으로 적대, 남암문, 남공심돈의 모습이 그대로 있는 아주 귀한 사진입니다. 남수문의 형체가 있는듯이 보이는데 확실하지 않습니다. 팔달문과 좌우로 연결된 성곽은 1925년이후에 해체한것으로 보입니다. 수원화성에서 유일하게 복원하지 못 한 성곽입니다.

 

▼ 구한말 우리나라를 조사하던 헤르만 산더가 말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모습입니다. 장소는 함경도 성진에서 길주로 가는길이라고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 수원향교의 모습입니다. 홍살문으로 보이는 문앞에 하마비가 보입니다.

 

▼ 봉돈 주위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이며, 장안문 안쪽 일대의 모습입니다.

 

▼ 화서문밖의 모습인데, 가을걷이가 한창인때의 모습입니다. 장안문 방향의 성곽 주위에 소나무가 보이는데, 지금의 성곽 보다는 훨씬 보기가 좋습니다.

 

▼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의 모습입니다. 화홍문 아래로 흐르는 물이 거의 없이 소가 풀을 뜯는것을 보니, 아마도 초여름인듯 보입니다.

 

▼ 화홍문 아래는 오래전 부터 빨래터였던 모양입니다. 오랜된 사진부터 1950년대까지의 사진에도 어김없이 빨래를 하는 여인네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 방화수류정과 북암문의 모습입니다.

 

▼ 설명에는 매향교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매향여고 앞에 있는 다리인데, 다리가 투박하지만 나름대로 튼튼하고 안정된 모습입니다.

 

▼ 북수문의 원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은 북수문이 복원되었지만, 복원된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습니다

 

▼ 공립보통학교라고 설명이 되어 있는데, 지금의 매산초등학교 입니다. 이 학교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현재의 매산로에 집중적으로 거주 하면서 일본학생 전용 초등학교(소학교)를 만들었는데 "수원공립심상고등소학교"라는 간판을 달았습니다

 

▼ 수원시가의 모습인데, 장소는 설명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 수원군수의 공덕비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만, 자세한 장소는 설명이 없습니다.

 

▼ 수원역앞이라는데, 서쪽에 칠보산이 보이는 곳으로 봐서는 아마도 수원역 부근에서 서쪽방향으로 찍은듯이 보입니다.

 

▼ 화성행궁의 신풍루입니다. 세로사진이었는데, 가로사진으로 올렸습니다

 

▼ 가게앞에 특이한 복장을 한 사람이 보이는데, 순검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순검은 구한말 조선시대때의 경무청 소속이었고, 그 후에 순사로 바뀌었습니다. 일본경찰이 아닙니다.

 

 

▼ 설명에는 수원의 교회라는데, 아무리 봐도 교회 같지는 않고 그냥 민가들의 모습인 듯 합니다. 옛 지명은 산루리였으며, 지금은 매산로 부근으로 보입니다. 멀리 팔달문이 보입니다.

 

▼ 정조의 건릉에서 찍은 사진인데, 홍살문의 높이가 지금보다는 한층 더 높이 보이고, 능을 관리하는 사람은 능참봉으로 보입니다.

 

▼ 정조의 건릉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국력이 쇠잔한 왕조였지만 능의 관리는 아주 잘 되어 있는 모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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