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사진을 시기별 순으로 알아 보았습니다. 1970년대에서 부터는 수원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였는데, 삼성전자를 비롯해서 선경합섬, 한일합섬등 대기업들의 공장이 한창 가동하던 시기여서 인구의 유입이 빠르게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수원의 옛날사진의 마지막으로 올리는 사진은 저의 고향마을인 천천2동(점터,황샛말)과 이웃한 꽃뫼마을의 사진 몇장과 고속버스, 고속도로의 사진을 올리고 마치겠습니다.

 

- 사진 자료는 수원시의 e-BOOK과, 경기도 멀리티미디어담당관(플리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이 사진은 아주 귀한 사진으로 저의 고향마을이 반쯤 찍힌 사진입니다.  행정명칭은 천천2동이었으며, 보통은 점터라거나, 황샛말로 부르던 농촌이었습니다. 이 사진은 1970년대 초반에 찍은것으로 보이는데, 길옆에 코스모스가 매년 피어있던 기억이 납니다. 손녀와 같이 가는 분은 누구실까? 긍금합니다. 보이는 지역은 전부 천천아파트로 개발이 되었다가 지금은 재개발되어 천천푸르지오로 바뀌었습니다.

 

▼ 다음 사진은 똑같은 천천2동의 모습입니다. "데메리리로이"라는 사람이 1980년에 수원역에서 서울방향으로 가는길에 짝은 사진인데 , 내가 살던 집도 잘 보이는 사진입니다. 아마도 수도권 전철안에서 찍은 사진인듯 합니다(Flicker에서 인용)

 

▼ 이 사진은 지금의 일월저수지 또는 구운들 저수지로 부르던 저수지였습니다. 봄철에 논에 물대기가 끝나면 저수지 물은 바짝 말라서 고기들이 많이 모이게 되는데 이때 둥네 어르신들이 물고기를 잡아서 철엽을 하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근처 초등학교에서 소풍을 온듯 합니다. 지금은 저수지 상류로 부터 유입되는 물이 없어서 성균관 대학교의 생활하수를 정화해서 보충하고 있습니다

 

▼ 투표장소가 화서동이라는데, 지금의 꽃뫼마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 1972년 지금 이 사진은 나에계는 무척 귀한 사진입니다. 옷 차림으로 봐서는 늦가을쯤으로 보이는데, 그 당시 화서동 꽃뫼마을의 주변의 논에 물을 대려고 보를 막는 공사를 하는 중입니다. 또한 마을 서쪽의 논이나 밭으로 가려면 서호천을 건너야 하는데, 마차나 경운기가 다니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는데, 보겸 시멘트 농로를 만들어서 꽃뫼마을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보입니다.

▼ 1973년 화서동 꽃뫼마을의 모습입니다.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했던 초가지붕입니다. 그나저나 누구의 집이었는지...

 

▼ 1975년의 꽃뫼마을앞에는 1층 슬라브의 마을회관이 만들어졌습니다. 경부선 철로옆에 있어서 학교를 다닐때 자주 보고 다녔습니다만 그 자리는 지금 신동아 아파트(113동)가 들어서 있습니다.

 

▼ 지금의 화양초등학교 근처의 사무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 1972년 가을 숙지산 기슭에 있는 화서초등학교의 운동회 모습입니다.

 

▼ 1969년~1970년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농민회관은 그 당시 대단한 높이의 건축물이었습니다

 

▼ 지금의 꽃뫼마을의 공동 빨래터로 기억하는데, 화서역 옆에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 1972년에 지금의 화서문에서 장안문까지 장안공원앞의 도로를 만드는 토목공사의 모습입니다. 왼쪽에 한국은행의 건물을 신축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 수원종합운동장이 한창 공사중인 항공사진 모습이며, 수원종합운동장은 1971년 10월에 준공되었습니다. 아랫쪽으로 하얀건물은 수성중학교 입니다_출처 경기도 멀티미디어담당관(플리커)

 

▼ 1972년 관공서의 사람들과 지역 어르신들이 서장대 부근에서 화서문 방향을 보는 모습입니다. 멀리 북쪽으로 수성중학교, 공설운동장이 보입니다.


▼ 1971년 복원되기전의 장안문의 항공사진입니다. 문루는 완전히 해체되었고 장안문 주위로 길을 확장해서 성곽의 흔적은 없어졌습니다

 

▼ 1970년대 말의 팔달문 복원공사중의 모습입니다. 특이하게 보이는 삼륜자동차가 그 당시에 1톤 화물차였습니다. 기아차에서 나온 2인승 화물자동차로서, 일본의 마쓰다와 기술제휴로 1959년 부터 면허생산을 하였던 T-1500이라는 모델입니다.

 

▼ 1972년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수원천 주변의 판자집들이 피해를 본 모습입니다. 서울 청계천이나 수원천이나 비만 많이 오면 벌어지는 피해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 1972년 후반에 수원천의 판자집들이 철거되면서 수원천은 어는 정도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 합니다.

 

▼ 1972년의 매교동 버스정류장의 모습입니다. 저세히 보면 버드나무 옆에 버스 정류소 표지판이 보입니다. 동네 할머니들이 곡식을 팔고 있는 듯 한 모습입니다.

 

▼ 1972년 지금의 수인로의 모습인데, 서둔동에서 수원역방향으로 뻗어 있는 길입니다. 소가 끄는 마차와 경운기가 공존하던 모습은 그 당시 흔한 모습이었습니다.

 

▼ 1972년 서둔에서의 추수작업 모습입니다. 아마도 농촌진흥청 소유의 농에서 시험재배한 벼를 거두는 것 같기는 합니다. 멀리 서호 제방 건너서 농민회관을 신축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 1972년 상공에서 내려다 보는 선경합섬의 공장모습입니다. 농촌진흥 원예시험장이 서쪽으로 보이는데, 최근 원예시험장은 전북 완주로 이전되어 기존의 원예시험장은 폐쇠되었고 부지만 남았습니다

 

▼ 위의 사진과 비슷한 시기에 찍은 공중사진인데, 이목동, 파장동등 도시로 개발되기전의 모습 그대로 보여줍니다

 

▼ 1972년의 성곽주변의 모습인데, 성곽 주변에 붙어 살던 집들은 모두 철거되는 과정의 모습입니다. 장소는 연무동 부근으로 짐작이 됩니다

 

▼ 1972년의 송죽동 모습으로 설명되는 사진인데, 광교산 기슭이 보이는것으로 봐서는 지금의 1번국도인 경인 산업도로가 뚫리기 전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 정자동에는 신일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그 정자의 이름을 빌려서 마을 이름이 정자동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 앞에 하천이 있었는데, 저런 다리가 여러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을 분들이 하천의 다리 공사를 하는 모습입니다. 지금 이 하천은 동남보건대학 앞을 지나서 서호천에서 만납니다만, 지금은 복개돼서 흔적은 없어졌습니다

 

▼ 1973년 여름날에 마을공동 퇴비장의 모습입니다. 그 당시에는 수원시에서 마을 마다 퇴비를 만들라고 성화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 1973년에는 새마을운동의 바람이 전국에 퍼지기 시작했는데, 장소로 봐서는 서둔동에서 고색동 방향으로 찍은 것 같습니다. 수인선의 고색철교가 보입니다

 

▼ 1976년 2월의 어느 번화가의 횡단보도 앞의 모습인듯 합니다. 그 당시에는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단속이 많았는데, 경찰한테 걸리면, 저 교양소 안에 들어 갔다가 나와야 되는데, 보통 창피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 1976년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의 북서포루의 보수작업인데, 거의 새로 쌓는 수준으로 보수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 1976년의 원천유원지의 모습인데, 수원에서는 그나마 원천유원지가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좋은 곳 이었습니다

 

▼ 벼농사철인 5월에는 논에 물을 대느라 물이 없어서 보트타는곳의 다리만 허전하게 남아 있는 모습입니다

 

▼ 원천저수지에 물이 가득한 여름날의 모습입니다.

 

▼ 이 사진은 1980년대로 보이는데,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를 하늘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저 멀리 수지 신도시가 보입니다

 

▼ 1977년대의 화서문 주변의 모습입니다. 서울공업사와 서문이발소의 건물들이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듯 합니다

▼ 1970년대 후반의 모습인듯 한 화홍문 상공의 항공사진입니다. 수원천의 하천을 정비 했는지 판자집들이 안 보입니다

 

▼ 1977년도의 한일합섬 공장의 모습입니다. 한창 잘 나가던 한일합섬은 1997년 외환위기때 침몰하였고 땅은 지금 조원동의 한일타운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한봄고등학교가 한일합섬에서 세운 학교입니다

 

▼ 1977년도에 수원에 투기바람을 일으켰던 화서아파트 입니다.

 

▼ 1977년에 수원병무청 주변에서 찍은 고등동과 화서동의 모습입니다.

 

▼ 지지대 고개 밑에 노송지대에 있었던 삼풍농원의 풀장입니다. 북수원에 이만한 피서지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풀장과 물미끄럼틀이 남아 있습니다만 영업을 게속하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1979년 6월 7일의 수원의 북부지역으로 보이는곳에서 경수산업도로 착공식이 있었습니다. 2019년인 지금 수원을 통과는 하는 경수산업 도로는 포화상태로 터질 지경입니다. 뭔가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 1979년도 이전의 지지대 고개 입니다. 경수산업도로 공사를 할때 구불구불하던 지지대 고개를 곧게 만들기도 했지만, 지지대비가 있는 도로의 깊이를 약 10미터 정도 낮추어서 포장을 했습니다.

 

▼ 일제강점기때나 1950년대로 보이는 노송지대의 사진인데, 사진전문가가 찍은 사진처럼 보이는 훙륭한 사진 입니다 

 

▼ 지지대 고개를 넘어오면 노송지대를 지나는데, 아마도 이목리쯤 되어 보이는 곳 입니다.

 

▼ 노송지대를 지나는 꽃상여의 사진인데, 그 당시의 장례는 절차도 복잡하고, 동원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마을의 모든 대소사는 공동으로 분담하는 두레 조직이 있어서, 큰일이 나면 모두들 거들어서 일을 처리하고는 했습니다.

 

▼ 고등동의 구 시외버스터미널의 복잡한 모습입니다. 너무 좁아서 다른 시외버스가 빠져 나갈때까지 저렇게 차선을 막고 기다려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 다음으로 고등동에 있었던 동양고속버스 정류장의 모습과 수원 톨게이트의 모습을 몇장 올립니다

 

▼ 고속버스 초기의 안내양 모습입니다

 

▼ 고속버스가 수원을 벗어 나려면 수원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야 합니다.

 

▼ 파란색 네모안의 수원톨게이트 입니다. 수원시와 용인시의 신갈부근의 모습이 자세히 찍혀 있습니다. 같은 장소의 항공사진을 여러장 올렸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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