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는  변화의 시대 약진수원이라는 이름으로 2014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옛수원 사진전(1970-80년대)을 열었는데, 자료에 수록 되었던 사진들중에서 대표적인 사진을 년도별 순으로 몇장 올려보았습니다.

 

- 자료 사진은 수원박물관/수원시청/경기도 홍보미디어(플리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첫번째 사진으로 동북공심돈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모델의 사진을 올려 보았습니다. 수원화성은 한국전쟁중에 장안문과 창룡문 주위의 주요 성곽 시설물들이 파괴 되었는데, 사진을 찍은 날자는 1971년 6월인데도 전쟁중에 파괴된 수원화성은 아직도 그대로 있습니다.

 

 ▼ 화서문 근처 성곽옆에 지어지고 있는 수원 최초의 아파트인 서문아파트의 건설 당시의 모습입니다. 골조 슬라브 3층 건물이며, 기둥 사이로 벽돌을 쌓은 방식인데, 그 당시에는 전부 저런 모양으로 아파트를 지었습니다.  연탄 난방방식인데, 겨울이 오기전에 연탄광에 연탄을 채우는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 아파트 공사가 끝나서 주민이 입주하고 살던 1971년경의 서문아파트의 모습입니다

 

▼ 1971년 서장대 아랫 부근에서 찍은 서문아파트의 모습입니다. 3개동은 입주되어 있고 1동은 공사가 중간쯤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서문 아파트는 처음 부터 자리를 잘 못 잡았습니다. 수원화성의 성곽에 너부 바짝 붙어 있어서서, 1980년대에 수원화성 복원에 따라서 헐리고 말았습니다.  

 

▼ 1972년의 서문아파트의 모습입니다.

 

▼ 동북공심돈 근처에서 화보 촬연중인 모델인데, 무척 아름다운 모습의 여인입니다. 창룡문은 보면 6.25 한국전쟁때 부서진 상태 그대로인 모습입니다.

▼ 1970년대 초 선경합섬의 상공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선경합섬은 1969년 공장이 완공 되었습니다.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의 모습도 보입니다. 선경합섬은 수원시 북부지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만. 지금은 커다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습니다

 

▼ 수원에서 선경합섬과 삼성전자를 빼 놓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수원시에 지대한 공헌을 한 회사들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초기에 일본의 산요전기와 합작을 하여 흑백 브라운관TV를 생산 하였습니다. 그 당시 흑백 TV를 만들던 여공들은 지금쯤은  70세 후반쯤 되셨겠죠?... 고생많으셨습니다...

 

▼ 1971년의 교동삼거리인데, 도로의 폭은 지금과 같은 모양입니다.

 

▼ 1971년 7월의 수원역앞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여러장 올립니다

 

▼ 1972년 3월의 봄날에 수원 송죽동의 모습이라는 사진설명이 있습니다. 지금의 송죽동의 모습을 찾을 수 는 없습니다.

 

▼ 소 달구지에 타고 있는 어린애들의 모습은 나와 비슷한 나이들로 보입니다. 그 당시의 소달구지는 걷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병원에 모시고 갈 때도 타고 다녔습니다.

 

▼ 1972년의 수원역 앞의 모습입니다. 수원역 앞의 광장을 만들려니 건물들이 많이 없어진 모습입니다.

 

▼ 수원 매원동은 지금의 매탄동과 원천동 일대의 지역인데, 지그금은 흔적도 없이 개발로 사라진 모습입니다

▼ 그때의 민방위 훈련은 보여주기식 행사가 많았습니다(1972년 6월)

 

 ▼ 수원의 어느 지역이라는 설명이 없는 사진인데,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흔한 모습입니다.

 

▼ 팔달문이 없다면 어디가 어딘지 모를 수원 중심의 1970년대의 모습입니다.

 

 ▼ 수원 팔달산 기슭에 자리잡은 경기도청 부근의 항공사진입니다. 오른쪽으로 농촌진흥청(이전)과 멀리 칠보산이 보입니다.

 

▼ 삼성전자의 1970년대 초기의 항공사진인데, 삼성전자가 초기에는 산요전기와 합작으로 흑백 브라운관 TV를 생산하였습니다.

 

 ▼ 지하철과 전철의 1호의 차량이 수원역에 있습니다. 그 당시의 전철은 일본에서 수입하였고 기타 전철의 공사에 들어가는 자재도 일본에서 수입하여 만들어졌습니다

 

▼ 수원역 담장과 지금의 세류동의 부근입니다. 3장의 사진을 서로 비교하여 보았습니다. 지금은 너무 혼잡한 지역이 되어 버렸습니다

 - 1960년대

 

-1972년

 

-1975년

▼ 1970년대 여름에는 풀을 베어서 퇴비를 만드는 일이 중요한 농촌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 지금의 병점에서 수원방향으로 찍은 1번 국도의 사진입니다. 저 도로는 나중에 비상활주로가 됩니다.

 

 ▼ 장안문에서 서울방향으로 보는 모습입니다. 도로의 넓이는 지금이나 그때나 달라진것이 없습니다.

▼ 북수원지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선경합섬 공장의 모습입니다.

 

 ▼ 1970년대 성곽에는 6..25전쟁중에 몰려든 피난민들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살았었습니다만, 수원화성의 복원사업이 진행되면서 정리가 되었습니다.

 

▼ 살기 어려웠던 1970년대에도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 였는지 창룡문의 보수작업이라는 사진설명입니다

 

 ▼ 6.25전쟁중에도 연무대(동장대)는 무사했는지 아니면 보수를 했는지 멀쩡한 모습입니다

▼ 보기 드문 컬러 사진으로. 창룡문과 동북공심돈이 복원된 모습입니다.

 

 ▼ 팔달산 기슭에서 바라보는 화서문 밖의 모습인데, 드넓던 논은 주택 단지로 바꾸어 가고 있고, 화서문 밖 오른쪽에는 한국은행 건물이 보입니다.

 

 ▼ 사진 설명에는 파장동으로 나와 있는데, 지형을 봐서는 율전동으로 보입니다. 파장동으로 지나가는 철로는 없습니다. 구로에서 수원까지 상하행선 2개 철로에서 4개 철로로 확장하는 공사입니다.

 

 ▼ 1970년대에는 흔한 모습인 모내기 모습입니다. 장소는 지금의 화서동 꽃뫼노을마을 풍림아파트이며, 동네 어르신들이 품앗이로 모를 내는데, 어린 나는 못줄을 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주식회사 선경 간판이 서 있는 자리는 서호천 옆의 지역난방공사(가압장), 모내는 장소는 현재 왕복 8차선 도로가 지나는 자리입니다. 멀리 천천1동(샘내)가 보이고, 굴뚝에서 흰 수증기가 나는 곳은 선경합섬, 오른쪽 하얀색 낮은 건물은 동남보건전문학교입니다.

 

 ▼ 지금의 장안공원의 1970년대 후반의 모습입니다. 영화동의 대유둔은 주택으로 채워졌습니다

 

 ▼ 동문로가 지나는 길의 성곽은 잘려 있는 모습인데, 지금은 육교로 이어져 있습니다

▼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항공사진입니다. 동쪽에서 서쪽방향으로 찍었는데, 공장끝은 삼성코닝과 삼성전관입니다. 2019년 현재와 비교하면 비교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바뀌어서 비교가 안됩니다.

 

 ▼ 수원 시외버스미널의 1970년대 모습입니다. 고등동에 있다가 지금은 권선동으로 이전하였습니다.

 

▼ 수원 화서동 지역의 항공사진입니다. 멀리 서호 옆에 농민회관이 보이고, 화서동의 최신아파트(주공)가 숙지산 기슭에 지어진것을 보니 아련한 기억이 떠 오릅니다. 예전의 서호는 경부선 철로를 넘어서 화서동 앞까지 물이 차 있었습니다

 

 ▼ 지금과 너무 다른 수원역앞의 모습입니다.

 

 ▼ 수원 종로에서 창룡문방향으로 가는 도로인데, 아마도 도로포장이 끝난후에 찍은 사진인듯 합니다.

 

 ▼ 사진을 찍은 장소는 지금의 화서1동입니다.

 

 ▼ 지금의 동수원 사거리에서 서울 방향을 보고 찍은 사진 입니다. 지금은 수원에서 교통체증이 제일 심한곳이 되었습니다.

 

 ▼ 너무 한산한 도로의 모습인데, 경기도 교육청서거리에서 동북공심돈(창룡문 방향)을 보고 찍은 사진 입니다.

- 끝 -

댓글 2
굿멘
2022.03.20 12:07 신고
너무 한적하고 좋아보이네요.
온갖 개발로 마을이 초토화되고 더 삼막하고 각박해진 오늘, 과연 누구를 위해 이 먼 길을 달려왔는지 되짚어 봐야 할것 같습니다.
국민을 위한건지, 가진자들을 위한 것인지.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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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비에뚜
2022.06.08 06:26 신고
60대 중반 수원토박이입니다.
옛추억이 소록소록 납니다.
중고등학교 때 지나다녔을 곳들의 옛모습이 저기에 있군요.
너무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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