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해파랑길을 걷고 싶어서 2017년의 두번째로 길을 떠나 해파랑길22코스가 시작되는 축산항으로 이동해서 북진방향으로 길을 찾아갑니다만, 이번에도 대소산 봉수대까지 산길을 걸어야 하고, 또 괴시리마을까지 산길을 걸어야 하는데, 사실 해변길을 걸으려면, 무척 위험하기 때문에 산길을 걸어야 하는것은 알지만 내심 언제까지 산길을 오르내려야 하나 걱정이 먼저 앞섭니다.

 

전체거리가 약16Km의 긴거리의 해파랑길22코스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1부(축산항->이색생가),2부(이색생가->고래불해변)로 나누어서 올렸습니다

 

▼ 아래 사진들은 영덕블루로드C코스의 그림을 영덕군 홈피에서 인용한 사진들입니다. 병곡면 들판 앞의 고래불해변이 멋진모습입니다. 

 

▼ 영덕블루로드C코스의 지도입니다

 

▼ 항공사진으로 본 대진리의 대진해수욕장의 모습이고 앞의 높은 봉우리는 관어대랍니다.

 

▼ 고래불해변 뒤로 병곡면의 벌판이 아름답게 펼쳐져있는 모습입니다 


 

▼ 축산항 뒷쪽의 앝으막한 야산 앞의 남씨발상지비앞에서 부터 해파랑길22코스를 출발합니다. 오른쪽 비문을 보면 "영양김씨시조유허비각"이라는 비문이 보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원래는 영양남씨와 영양김씨는 부자(父子)간으로 한뿌리었다는군요...

 

신라 경덕왕 14년 즉 을미년(乙未年)이었던 755년당나라 하남성(河南省)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에서 형주자사(荊州刺史)를 지낸 김충(金忠, 현 중국 汝南金氏)이 안렴사(按廉使, 순방사절)가되어 일본에 갔다가 돌아 가던 길에 해상에서 태풍을 만나 신라 유린지(有隣地), 즉 지금의 영덕군 축산면(丑山面) 죽도(竹島)에 표박(漂迫)하면서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에 신라 경덕왕은 김충이 여남(汝南)에서 왔으니 남(南)을 성으로 하여 남민(南敏)이란 이름을 하사하여 영양 남씨(英陽南氏)가 시작되었고, 김충이 처음 사신(使臣)으로 갈 때에 대동한 장자(長子) 석중(錫中)은 김씨 성을 유지하여 영양 김씨(英陽金氏)의 세계를 이었으며, 이로서 김충은 본관을 영양(英陽)으로 삼는 김(金), 남(南) 양씨의 시조가 되었다.- 위키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영양김씨 유허비각이며,

 

▼ 영영김씨 시조공 사적 안내문이며, 영양김씨 시조 김석중의 아버지는 남민(김충)으로서 영양남씨의 시조였다는 안내문입니다. 결론은 원래 여남김씨였던 아버지는 신라왕이 내려준 영양남씨의 시조가 되었고, 아들은 원래 중국의 여남김씨성을 그대로 유지하여 영남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영양남씨의 시조가 거닐었다는 산에 일영대와 일광대의 표지석입니다. 화강암의 표지석은 마모가 심하여 최근에 검은색의 표지석으로 교체하였으며, 표지석 뒷면에는 연혁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 산을 내려가는 계단식길이며, 거리는 30미터정도되는 짧은 거리로 금방 도로와 만납니다.

 

▼ 야산 끝머리 에서 바라보는 해안의 모습이 아침햇살에 아름답게 물드는 모습이며, 정자가 보이는곳에서 다시 산으로 올라갑니다

 

▼ 잠깐 갓길의 데크길을 걸어갑니다만, 모든 해안의 도로 갓길에 저런 데크가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침 해경의 순찰차가 지나가는데, 내륙과 달리 해안의 마을 치안은 해경이 담당하는가 봅니다.

 

▼ 쉼터와 영덕블루로드 안내판입니다,

 

영적블루로드의 A,B,C,D코스의 모든 지도가 표시되어 있는 안내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B"코스가 제일 좋고, 그다음은 "D"코스이며, "C"코스, "A"순으로 체력적으로 쉬운 코스가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결론은...

 - A코스 : 강구항에서 고불봉까지 힘든 산길이지만, 풍력발전단지의 모습은 정말 좋습니다

 - B코스 : 처음부터 끝까지 해안의 갯바위길이며, 해안의 마을을 지나는 아름다운 길이며, 체력적으로 힘든것이 없습니다.

 - C코스 : 처음부터 산길을 걷지만 A코스보다는 체력적으로 덜 피곤하며, 이색생가와 괴시리전통마을 부터는 해안을 끼고 고래불해변까지 아름다운 길을 걷는 길입니다.

 - D코스 : 장사해변에서 부터 화진해변을 지나 삼사해상공원을 거쳐서 강구항 까지의 아름다운 길을 수월하게 걷는 길입니다. 

 

▼ 이제 대소산 봉수대로 올라가는 들머리로 올라갑니다. 거리는 2.0KM라고 하니 금방 올라갈것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산길이라서 힘들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것은 어쩔 수 가 없더군요...

 

▼ 꾸준이 오르막이 대소산 봉수대까지 이어집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산 높은곳에 이런 체력단련 시설을 설치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까? 의문이 듭니다. 

 

▼ 대소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축도산 전망대와 축산항 모습입니다. 역광때문에 뿌옇기만 합니다. 

 

▼ 아침일찍 축산항에 도착해서 잠깐 해안을 구경하면서 찍어둔 죽도산입니다 

 

▼ 대소산 봉수대에 도착했지만 언뜻 보기에는 퇴뫼식 산성같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 봉수대를  옛날식으로 복원을 해놓았다는데, 봉수대 중앙부위인 봉돈을 흙으로 채워놓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봉수대 가운데 부분을 비워놓아아 불을 피울것인데, 그냥 묘같이 흙으로 채워 놓은것은 잘못된 복원이라 생각합니다.

 

대소산 봉수대에서 북쪽으로 바라보이는 영해면과 병곡면 벌판이고 그 뒤로 낙동정맥에서 분기된 칠보지맥의 칠보산(810M)이 버티고 있는 모습입니다.

 

▼ 봉수대 주변에는 옹성을 쌓은 모습인데 봉수대 주변에 옹성을 쌓은 모습은 처음 봅니다 

 

▼ 가야할 방향에 보이는 정자는 블루로드 쉼터랍니다. 불루로드길에는 저런 정자가 많이 보입니다.

 

▼ 돌로 탑을 쌓은 모습인데, 돌무더기가 떨어진줄 알았더니, 지금 탑을 쌓은중으로 돌을 모으시는중이더군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 소나무길을 걷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길로 가야 합니다. 

 

▼ 목은 이색 등산로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목은 이색 생가까지는 아직도 3.1Km를 더 가야 합니다.

 

▼ 목은 이색 생가터로 가는길에 또 정자를 만납니다. 정자 이름은 망월정... 그런데 소나무가 많아서 달이 보일런지는 모르겠습니다 

 

▼ 또 갈림길이 나오는데, 무심코 가다보면 직진하는 수 가 있으니 여기서 또 우측으로 꺽어야 합니다

 

▼ 현수교 방향으로 가는길이랍니다.잠깐 내려갔다가 올라갑니다. 

 

▼ 이 다리는 바닷가의 사진리에서 괴시리로 넘아가는 도로를 가로지르는 현수교입니다. 바람에 약간씩 흔들립니다.

 

▼ 괴시리에서 차가 힘들게 넘어오고 있습니다 

 

▼ 현수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옛날길을 만나는데 이길은 옛날길로서 사진과 괴시리를 연결했던 옛길입니다. 여기서 앞방향으로 10미터를 더 가서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 영덕 블루로드의 안내판은 참 잘되어 있습니다. 

 

▼ 평상까지 해 놓았는데, 한여름이라면 여기서 한숨 자고 가도 좋을것 같습니다. 

 

▼ 삼거리에서 관어대로 가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길은 관어대탐방로라는 길이 따로 있는길로 블루로드에서 분기된 길입니다

 

▼ 관어대는 아니지만 잠깐 다녀오면 바다가 시원하게 보일만큼 조망이 좋을것이라고 봅니다

 

▼ 봄에 핀꽃은 아니고 원래 색갈이 분홍색인 조경수인듯이 보입니다.

 

▼ 목은(호) 이색(이름)의 생가터에 왔습니다. 휴일인데 찾는 사람이 없이 조용하기만 합니다. 

 

▼ "가정목은양선생유허비"라고 쓰여져 있는데, 가정(이곡)과, 목은(이색)선생이 살았던곳이라는 비문입니다. 이곡은 이색의 아버지입니다. 옛날의 유허비는 쓰러져 부서졌지만, 이 자리가 목은 이색의 생가지라는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

 

▼ 잘 지어진 목은기념관의 모습입니다. 

 

▼ 목은기념관 뒤에는 시비가 있는데, 목은 이색의 한시 관어대소부라는 시입니다.

 

▼ 관어대소부라는 시를 한글로 풀어서 옮긴 시비입니다.

 

▼ 목은기념관과 목은이색의 석상입니다. 목은 이색(1328~1396)은 혼란스런운 고려말의 학자로서 조선개국공신 정도전의 스승이었답니다. 하지만 조선개국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후배와 제자들에게 배척당하였으며, 심지어 정도전은 목은 이색의 아들 둘을 죽이므로써 집안이 풍비박산의 비극을 겪기도 하였답니다.

 

▼ 목은기념관 아래에는 시비들이 한문과 한글로 풀어서 쓴 시비들이 여러개 보입니다.

 

▼ 이시는 목은 이색선생이 지은시는 아니고 후손이 지은시라는군요!

 

단양고을은 나의 고향으로,

경치가 동방의 으뜸이거니와, 

공명은 그런대로 이루었으니,

건강한때에 집 가려짓고,

우리함께 관어대에 올라가서

해돋이의 빛을 한번 마셔야겟네.

 

부벽루(浮碧樓) - 목은 이색

昨過永明寺(작과영명사) ;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暫登浮碧樓(잠등부벽루) ; 잠시 부벽루에 오르니
城空一片月(성공일편월) ; 성은 비어 있고 하늘엔 조각달,

石老雲千秋(석노운천추) ; 돌은 오래 묶고 구름은 천년을 떠도네
麟馬去不返(린마거불반) ; 임금 탄 기린마는 한번 떠나 돌아오지 않고,

天孫何處遊(천손하처유) ; 임금은 지금 어느 곳에 놀고 있는가
長嘯倚風磴(장소의풍등) ; 길게 휘파람 불며 바람 부는 비탈에 서니,

山靑江自流(산청강자류) ; 산은 푸르고 강물은 절로 흐르네

 

 

회구가 / 이색(목은)
白雪(백설)이 자자 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반가 온
梅花(매화)는 어느 곳에 픠엿는고.
夕陽(석양)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외삼촌을 위하여...

 

▼ 영해 동녙바다 해돋이 

- 해파랑길22코스(1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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