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칭 : 세계유산등록특별우표(제6집)_수원화성

※ 발행 : 2002년 12월 9일 

※ 인터넷우체국(K-stamp), 국가기록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화성(華城)은 조선조 제22대 정조의 효심과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축성되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수원을 자신이 이상으로 꿈꾸는 신도시로 건설하고자 화성을 건축하게 되었다.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까지 3년여에 걸쳐 완성된 화성은 성문(城門)과 비밀 출입문인 암문(暗門), 감시장소인 적대(敵臺), 전망대이자 공격장소인 공심돈(空心墩), 적을 공격하는 장소인 포루(砲樓) 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며, 수해와 전란으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실학자 정학용에 의해 건축된 화성은 동서양의 건축술과 과학기술이 어우러져서 축조된 군사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동북공심돈은 화성에서 가장 독특한 건물로 꼽히는데, 원통형으로 축조되어 내부에는 나선형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공심돈이란 전시에 사용되는 관측소로 위, 아래에 구멍을 뚫어서 바깥 동정을 살필 수 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총포를 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성벽 상부에 3층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아래층에는 군사들이 몸을 가리게 되어 있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꽃을 찾고 버들을 쫓는 정자`라는 뜻의 방화수류정은 불규칙적인 형태를 지니면서도, 주변의 경관과 조화를 이룬 건물로,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휴식처일뿐만 아니라 동북각루(東北角樓)라는 원래의 이름처럼, 유사시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감시의 기능을 지닌 장소이다. 방

 

화수류정은 목조와 벽돌을 결합한 건축물로, 상부는 기존 목조건축의 구조를, 하부의 기단벽면 테두리는 석재로 짜고 그 내부는 벽돌로 채워 넣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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