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선생묘(鄭夢周先生墓)는 경기도 용인시에 있으며, 1972년 경기도기념물(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워낙 잘 알려진 분의 묘이라서 약간의 부담감이 있을 만 하지만, 가볍게 둘러보기 좋게 꾸며져 있고 묘소 가까이에 가 볼 수 있는 곳입니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곡로 45(능원리)
- 모현면은 원래 쇄포촌(灑布村) 이었던 것을 포은 선생 묘를 이장한 후, 어진 현인을 사모한다는 마을이란 뜻의 모현촌(慕賢村)으로 고치었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 때 모현면으로 고친 것으로 보입니다.
정몽주선생의 묘는 원래 개성 풍덕군에 있었다가, 태종 6년(1406)에 후손들의 요청으로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이장을 하려 하였으나, 어찌 된 일인지, 장례 행렬은 용인에서 멈추고, 그냥 지금의 자리에 선생을 모셨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선생의 이장행렬이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자 이장 행렬 앞의 명정(銘旌, 다홍 바탕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품계, 관직, 성씨를 기록한 깃발)이 바람에 날아가 지금의 묏자리에 떨어졌으므로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생각으로는 태종 이방원이 선생의 묘소를 이전을 허락하기는 하였으나, 정몽주선생의 묘소를 고향인 영천으로 옮긴다면 영천지역 백성들의 민심을 자극할 것으로 우려되어 용인쯤에서 자리를 잡으라고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태종 이방원의 정세를 보는 눈과 뛰어난 정세판단 능력을 본다면 분명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 포은대로에서 바라보는 정몽주선생의 묘역입니다. 주차장은 묘역 입구에도 있고, 도로를 건너기 전에도 있습니다


▼ 묘역 안내도를 보면, 정몽주선생의 묘와, 저헌 이석형선생묘, 연안이씨비석공원이 한 묘역에 있는데 흔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 고려 말기의 충신으로 우리나라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 선생의 묘소이다.공민왕 9년(1360)에 문과에 장원급제 후 예문관검열·대사성 등의 여러 벼슬을 거쳤다.
고려 당시 풍속이 모든 상제(喪祭)에 불교의식을 숭상했는데, 『가례(家禮)』에 의해 사당을 세우고 신주를 만들어 제사를 받들게 하도록 해 예속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힘썼다.
서울에는 오부학당(五部學堂)을 세우고 지방에는 향교를 두어 교육의 진흥을 꾀했고 기강을 정비하였으며 의창(義倉)을 다시 세워 궁핍한 사람을 구제하는 등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였다.
이성계의 세력이 날로 커져서 조준(趙浚), 정도전(鄭道傳) 등이 새 왕조를 세우려 하자 끝까지 고려 왕실을 지키려다가 공양왕 4년(1392)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선죽교(善竹橋)에서 피살되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신도비각이 정몽주선생의 신도비입니다.

▼ 정몽주선생의 신도비 비각은 1980년에 세웠습니다.

▼ 신도비 전액(머릿글)에는 김수항(金壽恒)선생이 전서체로 포은정선생(圃隱鄭先生)이라고 쓴 글씨가 각서 되어 있는데, 건립연대는 조선 숙종22년(1696년)때로 알려져 있고,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으며, 글씨는 현종 때 문신 김수증이 썼습니다.

▼ 정몽주선생 신도비 옆에는 정몽주선생 후손들의 신도비와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 묘역에서의 주의사항을 보면, 골프공치지말것, 썰매타지말것등의 재미난 문구가 보이는데, 가끔 묘역에서 골프공을 치는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잔디가 좋아도 그렇지 여기서 골프공을 치다니...

▼ 묘역으로 들어가는 길 입니다만, 홍살문이 안 보입니다. 원래는 이 자리쯤에 홍살문이 있었는데, 길을 넓히면서 재실 뒤편으로 옮긴 듯합니다. 내 생각에는 홍살문이 재실 입구에 있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듭니다.

▼ 묘역 앞에는 넓은 잔디밭이고, 큰 행사 때는 주차장으로 쓰이는 듯합니다.

[자료:경인일보] 자료사진으로 보면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묘역의 앞마당은 닭 사육장이었습니다.

▼ 문수산 능선 자락 밑에 묘소 관리실, 재실등이 있습니다.

▼ 경모사(敬慕舍)는 묘소와 재실을 관리하는 분들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합니다만, 정몽주선생의 묘와, 저헌 이석형선생의 묘도 같이 관리하시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경모사(敬慕舍)는 사람이 살림을 하면서 상주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모현당(慕賢堂)은 경모사(敬慕舍)와 길이 이어져 있으며, 재실로 쓰이는 집으로 보입니다.

▼ 모현당은 물론 재실 부속건물은 들어가서 볼 수는 없습니다

▼ 왼쪽은 해설사의 방이 있으며, 오른쪽은 정몽주선생의 신위를 모신 영모재입니다

▼ 제향을 위해 지어진 영모재(永慕齋)인데, 정몽주선생의 신위만 모시는 것인지, 아니면 저헌 이석현 선생의 신위도 모시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영모재(永慕齋)의 담장 내부입니다

▼ 영모재 앞으로는 묘역으로 들어가는 홍살문과 안내문이 보입니다.

▼ 고려말의 신진사대부는 불교의 국가에서 성리학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이념을 가진 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공통의 생각은 같았으나, 고려의 국가를 유지하면서, 정치개혁을 추구하는 정몽주와 역성혁명을 통해서 성리학의 국가로 만들려는 급진세력의 정도전과 이방원과의 함께 성립하기는 어려웠으므로 , 선수를 친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참살당하였습니다. 정몽주가 죽은 후 3개월 후에 조선이 건국되었습니다.
이때 이방원은 26세, 정몽주는 30년 연상인 56세였습니다.

[자료:e-뮤지엄] 포은선생상

▼ [자료:e-뮤지엄] 선죽교는 일제강점기 때 엽서로 발행되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선죽교가 보물입니다



▼ [자료:e-뮤지엄] 일강점기때 유리건판으로 찍었던 선죽교 사진들입니다


▼ [자료:e-뮤지엄] 정몽주선생의 신도비와 비각입니다.

▼ 2007년 개성관광이 허용되었을 때의 모습입니다.

▼ 이 백로가는 포은 선생의 어머니가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만, 정몽주의 어머니는 정몽주가 29세 되던 해에 이미 세상을 떠났고, 정적(政敵)인 이방원은 그 후 3년 뒤에 태어났으므로, 이 시가 이방원을 경계하는 시는 아니고, 배신이 판치는 정치판을 경계하라는 시로 보입니다. 다른 자료를 보면 이 시조가 연산군 때 김정구(金鼎九)의 작품이라는 글도 있습니다.

▼ 이방원이 하여가를 읊고, 정몽주가 단심가를 읊었다니... 이 시를 보고 이방원은 정몽주와 같이 역성혁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 홍살문 앞에 놓인 다리(선죽교)를 건너서 묘역으로 들어갑니다

▼ [자료:용인시민신문] 해방 후에 포은선생 묘소에 참배 중인 모습입니다. 지금 잔디밭이 그때는 논이었습니다.

▼ 묘소 입구에서 좀 올라가야 하며 중앙의 묘가 정몽주선생의 묘입니다.



▼ 포은선생의 묘는 성역화 되면서 석물이 많이 추가되었고, 전체적으로 왕릉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 묘비는 중종 12년(1517)에 건립되었으며, 묘비에는 ‘고려수문하시중정몽주지묘(高麗守門下侍中鄭夢周之墓)’라고 고려시대의 관직만 새겼습니다. 부인(경주이씨)와 합장묘입니다.

▼ 원래의 작은 문인석 옆에 키가 큰 문인석이 추가되었습니다.


▼ 상석이 두개인데, 특이한 경우입니다. 망주석은 일반적으로 상석 전에 있는데, 묘지에 가까이 있습니다.

▼ 망주석(望柱石)이 두 개가 세워져 있고 망주석 기둥에 세호(細虎)가 양각되어 있습니다. 세호는 호랑이를 뜻하는데, 보기에는 호랑이 같지가 않습니다.
세호는 보통 왕릉의 망주석에서 보이며, 가끔은 벼슬 꽤나 했던 분의 무덤의 망주석에도 세호가 있기는 합니다. 세호의 의미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의 동물을 의미하며, 좌우의 세호를 보면 방향이 틀리게 되어 있습니다.

▼ 장명등과 석양(石羊)이 보이는데, 이 또한 왕릉의 형식을 빌린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이 석양이나 장명등이 없었는데 후대에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왕릉이 아닌 묘에 석양을 배치한 것은 처음 봅니다.

▼ 원래는 곡담(둘레돌)이 없었던 묘소였지만 1970년 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둘레돌이 추가로 설치되었습니다.

▼ 정몽주묘는 성역화 되면서 왕릉처럼 호석을 두르고 난간석까지 둘렀습니다.

▼ 정몽주선생의 묘소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면 저헌 이석형선생의 묘소가 보입니다. 저헌 이석형선생의 부인은 정몽주 선생의 증손녀입니다.

▼ 홍살문을 기준으로 정몽주선생의 묘와 재실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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