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박물관의 입구에서 부터 주차장으로 오르는길을 따라서 오른쪽에 다수의 송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송덕비는 수원의 목민관으로 부임하였던 수원부사, 수원유수등의 송덕비인데,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등 여러가지로 불렀지만, 그 뜻은 모두 똑 같습니다.
수원에서는 고려와 조선초기에는 부사가 부임하였으며, 정조때 화성이라는 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직책의 등급이 높은 유수가 부임하였는데, 초대 화성유수(수원유수)는 변암 채제공(蔡濟恭)이었습니다.
유수는 주로 한양을 둘로싸고 있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유수를 두어 관리하게 하였는데, 수원,광주,강화,개성등이 있습니다.
원래 수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이목동의 노송지대에 모아 두었다가 수원박물관이 생기면서 박물관야외에 전시하고 있는데, 총 37개의 송덕비를 향토유적 제3호로 일괄 지정하였으며, 수원박물관에 27기, 수원화성박물관에 10기를 전시 중입니다.


▼ 비좌는 거북이 모양도 있고, 일반적인 방형의 석재비좌도 있습니다

▼ 유수 이재원의 불망비는 3개가 전시되어 있는데, 3번 연임으로 수원유수를 지낸것도 아닌데 불망비가 3개라니... 수원으로 드나드는 길목마다 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 불망비중에서 민승호의 불망비가 있어서 저세히 보게 되었는데, 민승호는 아시다시피 민비의 양오빠입니다. 조선말기에 민씨친족들의 부정부패로 조선을 망하게 하고, 왕권을 일본에게 받치는데, 크게 기여한 그 댓가로 큰 재산을 축적하였다는 역사를 보면 그 당시의 민씨친족들을 좋게 봐 줄 수가 없습니다.

▼ 민승호 (閔升鎬)는 민씨일가를 대표하여 흥선대원군을 축출하는데 힘썼으며, 흥선대원군 축출이후, 국정전반에 참여하였다가, 1875년 1월 5일(양력) 승려가 가져온 선물 꾸러미로 위장된 폭탄을 방안에서 풀어보다가 폭사(46세)하였습니다. 이때 민승호, 민승호아들, 민비친모 한산이씨등 3명이 폭사하였는데, 폭사사건의 배후는 못 밣혔다고 합니다.

▼ 여러 불망비중에 김홍집의 선정비가 보입니다. 김홍집은 개항기에 각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외교적으로 주요 역할을 맡았고, 온건개화파로서 갑오개혁 등 개화정책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도망간 아관파천으로 친러정권이 수립된 후 친일 대신으로 지목되어 광화문에서 군중들에게 타살(54세)되었습니다.





▼ 거북의 머리에 다섯개의 홈이 보이는데, 자연적인 홈이 아닌 사람이 일부러 파 놓은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홈을 성혈(性穴) 또는 홈구멍이라고 하는데, 멀게는 선사시대에서 부터 짧게는 조선시대말 또는 근대시대에 까지가도 민간에 널리 퍼진 일종의 민속적 신앙 또는 개인의 소망들을 표현한 행위의 증거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높는 관직에 오른 사람의 선정비에 돌로 홈을 만들면서 자식의 출세를 바라는 어미의 모성이 남긴 흔적이 아날까 생각이 듭니다.

▼ 부사 이상진의 귀부(龜趺)에도 홈구멍이 있습니다만, 다른 선정비의 거북모양이 아닌 일반 비좌에는 홈구멍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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