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산성은 삼국시대의 역사서인 《삼국사기》 신라본기 자비마립간 13년(470년)에 “삼년산성을 쌓았다. 삼년이라 한 것은 공사를 착수한 때부터 시종 3년에 공사를 마쳤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라 하여 그 축성연대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소지마립간 8년인 486년에 삼년산군의 인근 지역인 일선군 장정 3,000명을 징발하여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개축한 기록이 있다. 이처럼 삼년산성은 축성연대는 물론 수축연대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어 5세기 후반 신라의 축성기술과 공역기간은 물론 추풍령로를 통한 신라의 북진과정을 고찰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다음백과

 

▼ 서문방향의 주차장에서 바라본 서문과 남문 사이의 성벽입니다. 흔히 잘 안보이는 조선의 성벽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커다란 바위산을 보는듯 합니다.

 

▼ 삼년산성 서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주차장이 있어서 여기에 주차하고 10분 정도를 걸어서 갑니다.

 

▼ 삼년산성의 전체 모습을 담은 항공사진위에 동,서,남,북의 문지와 치성들을 표시한 안내도 입니다. 다른 안내도를 봐도 전부 북문지가 빠져 있어서 북문지에 북문 위치를 표시해 두었습니다.

 

▼ 서문지 입구에 와서 보는 모습입니다.

 

▼ 서문지 안에 들어서기 전에 남문지 방향으로 뻗은 성벽을 보고 있으면 성벽의 두께가 어머어마하게 두꺼운 것에 놀랍니다. 성벽의 두께는 8~10미터 정도 됩니다. 이렇게 성을 쌓았으니, 1500년의 세월을 버틴 불멸의 산성이라는 말이 무색하지가 않습니다.

 

▼ 서문지 양쪽으로는 지형에 치성을 만들자리가 없어서 인공적으로 치성을 만들었는데, 서문 양쪽에 하나씩 돌출된 성을 쌓아 서문의 방어를 극대화 시킨 치성입니다.

 

▼ 서문지의 성벽을 보면 어떻게 성돌을 쌓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돌을 납작하고 길게 다듬어,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엇갈리게 쌓아서 쉽게 성돌이 빠지지 않고, 또한 성돌의 무게를 골고루 분산 할 수 있게 쌓았습니다. 성벽 아래에 보면 수구(水口)가 보이는데, 성안의 고인물이 아미지에 모였다가 밖으로 빠지는 배수구입니다. 그런데 서문지가 너무 넓게 보이는데, 차량통행 때문에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복원공사를 끝낸것 같습니다.

 

▼ 서문터의 안내문인데, 이 서문터에서는 뜻하지 않은 집중호우때문에 최초의 서문 유구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  1980년 7월, 4시간 동안 337㎜나 퍼부은 보은지방의 집중호우로 성안의 빗물이 서문 자리로 쏟아져 흐를때 바닥이 씻기면서 문을 끼웠던 석재들이 드러났습니다.

 

▼ 처음에 설치된 문은, 오랫동안 사용되다가 어느 때인가 부서지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그 위에 새로 문이 설치되었던 것인데, 자세히 보면 성문이 안에서 밖으로 열게 되어 있습니다.

 

성문이 보통은 밖에서 안쪽으로 밀어서 열리도록 만들었는데, 이는 성안의 군사가 갑자기 출동할 때 편리한 공격적인 문의 형태로 보입니다.

 

또 문지방돌에 수레가 드나들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는데 그 너비로 보아 바퀴의 축거리가 1.66m나 되는 큰 수레가 다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차의 수많은 왕래로 바퀴에 문지방이 닳았습니다.

 

▼ 서문지에서 북쪽방향입니다. 서문을 방어하는 치성이 돌출되어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 삼년산성 안내도가 보이고 암각자 있는 바윗돌의 보이는데, 아무리 봐도 글자가 새겨져 있는 바위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암각자는 아미지, 유사암, 옥필 이렇게 세군데가 있습니다

 

▼ 아미지(娥;예쁠아, 眉;눈썹미;  池;연못지),

   유사암(有;있을유,  似;같을사, 巖;바위암),

   옥필(玉;구슬옥, 筆;붓필)

 

▼ 아미지 글자가 새겨져 있는 바위에 올라가서 연못을 봤습니다. 옛날 초기에는 작은 연못이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누군가 논 농사를 지었던것이 아닐까 하는 흔적 보입니다.

 

▼ 서문지 안쪽에서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이 삼년산성의 영향으로 보은군의 신라지명은 삼년산군 -> 삼년군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후에 백제 부흥군이 곳곳에서 저항 전쟁을 일으키자 당 고종이 사신(왕문도)을 파견 했는데 신라 태종 무열왕이 이 삼년산성 서문에서 당나라 사신(왕문도)을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 서문에서 북문방향으로 길을 가기로 합니다.

 

▼ 북문으로는 경사진 길을 올라가는데, 남문방향으로 뻗은 성벽을 봅니다. 범접 할 수 없는 성벽입니다. 삼국시대때의 산성은 대부분 축성공법이 비숫한데, 마치 견훤성이나, 고모산성을 보는듯 합니다. 아마도 백제나, 신라의 축성기술이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서문에서 남문방형으로 뻗은 성벽을 보면 밖으로 튀어 나온 돌 구조물이 보이는데 인공적으로 성돌을 쌓아서 만든 치성(雉城)이라고 하며 서문을 수비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적군이 서문에 접근하면 치성에서 효과적으로 감시하고 공격하기 수월합니다. 이러한 치성을 서문 양쪽으로 배치하였습니다

 

▼ 서문의 왼쪽에 있는 치성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 서문 왼쪽 치성의 모습입니다. 복원공사는 여기까지 입니다.

 

▼ 언젠가는 복원이 될터이니 그때까지 잘 버텨야 한다

 

▼ 성 내부의 산책길을 따라 가다가 서문방향으로 보는 모습입니다.

 

▼ 서문에서 북문방향으로 가면서 보면 성벽은 무너지고 잡목에 가려져서 안 보입니다.

 

▼ 서북치성에서 보는 북동치성의 모습입니다. 길게 이어진 성벽의 중간에는 북문지가 있습니다

 

▼ 북동치성을 당겨서 담아본 모습입니다. 치성 양쪽으로는 무너진 성돌들이 널부러저 있고, 치성은 전망대로 만든 모습이 잘 보 입니다

 

▼ 지반이 약해진 곳의 성벽은 여지없이 무너져 있습니다.

 

▼ 성벽 옆의 길을 따라서 내려가다가 담아 보았습니다. 움푹 들어간 곳이 북문지 입니다.

 

▼ 지나온 서북치성 방향으로 보는 성벽입니다. 1500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듯이 견고한 모습입니다.

 

▼ 북문지의 모습입니다. 서문지는 성문이 있었던 구조였지만, 북문은 현문식의 성문이었습니다

 

▼ 북문지 안내문을 보면, 현재의 성문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치성이 추가 되었고, 치성위에는 누각이 있었다고 합니다

 

▼ 성안에서 보는 북문지 입니다. 별다른 모습은 아직 안 보입니다

 

▼ 문 밖에 넓은 대(臺)가 보이는데, 조선시대때 쌓은 치성이랍니다

 

▼ 성밖에서 보면 치성이 잘 보이는데, 치성은 복원하였고, 조선시대때 있었다는 누각은 없는 상태 입니다

 

▼ 다시 성 안으로 들어와서 북동치성 방향으로 갑니다.

 

▼ 북문지에서 동문방향으로 보는 성벽은 1500년전의 성벽을 보는듯이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 경사진 성벽의 끝에는 북동치성이  보입니다

 

▼ 북동치성 끝에서 바라보는 서북치성의 모습입니다. 서북치성은 흔적만 있을뿐 안쪽에서 봤을때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 북동치성을 올려다 봅니다. 너무 높아서 사진으로는 높이를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 북동치성 위에서 지나온 서쪽으로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중간은 북문지 입니다

 

▼ 북동치성에서 바라보는 동문지 방향의 모습입니다. 여기 북동치성에서 보면 사방이 아주 잘 보이는 곳인데, 군사적으로 최고의 망대입니다.

 

▼ 속리산 말티재 입니다. 보은에서 속리산 지역으로 들어가려면 옛날에는 저 말티고개을 넘었습니다.

 

▼ 북동치성에서 내려와서 동문지로 가는길에 담아본 서문지 방향의 성벽입니다

 

▼ 무너진 곡성위에서 바라보는 북동치성입니다

 

▼ 동문지로 가면서 담아본 모습들입니다

 

▼ 뭐지???

 

▼ 치성인지 곡성인지 모를 성벽위에서 동문지 방향입니다. 동문지는 움푹 둘어가서 안보입니다 

 

▼ 동문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삼년산성의 주 출입구는 서문과 동문이었다고 합니다 

 

▼ 동문지를 보면 현문식이었고, 서문지 만큼 복원에 신경을 쓴듯한 모습입니다.

 

▼ 안내문을 보면 동문지는 후대에 ㄹ자형 으로 되어 있었다고 하며, 지금 봐서는 잘 모르는 상태입니다.

 

▼ 동문을 드나들때는 꺽어서 드나드는 구조입니다. 또한 통로에 고인물이 성밖으로 빠져 나가는 수구가 하나 보입니다

 

▼ 동문지옆의 성벽 상단을  뭔가 아쉬움이 . .

 

▼ 동문지 밖으로 나와서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1500년 전으로 돌아간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 동문지 옆의 북벽은 많이 허물어졋습니다.

 

▼ 동문지 전체를 보는 모습입니다

 

▼ 동문지에서 남동치성 방향(남문방향)으로 가면서 보는 모습입니다.

 

▼ 남동치성 방향의 성벽은 중간에 많이 무너졌지만, 위대했던 나라의 위엄만큼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 남동치성의 안내문입니다. 보은 대야리에는 경주 못지 않은 고분들이 삼년산성 주변에 많이 있는데, 일제강점기때 대부분 도굴되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고분들이 발굴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남동치성에서 바라보는 남문지까지의 성벽의 모습입니다.

 

▼ 남문지 근처에서 바라보는 서문지 모습입니다. 북문지에 보이는 건물은 보은사라고 하는데, 일반 가정집 같은 모습입니다

 

▼ 북문지는 현문식이며, 옛날에도 통행이 뜸했다고 하며, 지금은 폐쇄되었습니다

 

▼ 남문지에서 서문지 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 멀리 바라보는 북동치성의 모습입니다

 

▼ 이제 서문에서 1.8km의 성둘레길을 마칩니다. 고려태조 원년 왕건도 후백제 견원이 점령했던 삼년산성을 치려다 실패를 안긴 무적의 성이라는것을 증명하여주는 답사였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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