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면천읍성은 충남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조선시대 면천현의 읍성이며, 조선초기 세종 21년(1439년)에 왜놈들의 노략질 때문에 성을 만들었습니다

 

성의 둘레는 약 1,330m이고, 기다란 타원형의 모습입니다. 조선 초기 해안지역 읍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며, 남문·동문지·서문지, 북문지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약 190여개의 읍성이 있었지만, 임진왜란 때는 평지의 읍성이 방어에 극히 취약하였다는 것이 증명이 되어, 읍성보다는 산성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면천읍성은 해미읍성과 비교해도 역사적으로나, 문화관광지로서의 가치가 충분한데도 실질적인 발전은 지지부진합니다.


▼ 면천읍성 남쪽의 성벽이며, 옹성으로 감싸져 있는 곳은 남문입니다

 

※ 면천읍성에는 2020년 10월에 한번 다녀왔습니다.

https://sm-sunny.tistory.com/당진면천읍성(唐津沔川邑城)

 

▼ 면천읍성을 알려면, 면천면의 역사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인용]

현재의 당진시 면천면은 삼국시대 때 옛 백제의 군현으로 내포 지방의 중심이던 곳이며,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패망한 후에는 백제 부흥군이 잠시 주둔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의하면 옛 면천군은 백제 때 혜성((槥城), 백제 패망 이후, 신라 경덕왕 때 혜성군(槥城郡)으로 고쳤습니다. 

1290년(고려 충렬왕16년)에 이르러 개국 공신 복지겸의 후손인 복규(卜奎)가 거란의 침입을 막는데 공이 컸으므로, 지면주사(知沔州事)로 승격하였고, 조선 태종 13년(1413)에는 면천군으로 고쳤습니다.

 

조선 시대 면천군은 당진현, 여미현, 신평현등을 속현으로 거느리고 있던 내포 지방에서 상당한 규모의 치소(治所)였는데, 1914년 일제강점기 때 당진군과 합쳐지고, 당진군이 시로 승격이 되면서 당진시에 흡수되었습니다.

 

현재 면천읍성은 2014년 까지는 성곽의 남쪽 부분만 복원이 되어 있었는데, 2023년에는 동쪽성벽의 치성(雉城)과 서쪽의 성곽, 치성(雉城)을 일부 복원 하였습니다.

 

사실 석성(石城)의 복원은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꽤 많이 걸리는 사업이다 보니 보통은 10년이상~ 20년이 걸리기도 하는 사업입니다.

 

성곽의 중간쯤에 수구(수로)가 보이는 곳에 성문을 보호하는 적대(치성)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을 보면, 원래 없었거나, 아니면 복원과정에서 제외하였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안내도에는 표기되어 있습니다).

 

▼ 남문의 옹성이며, 성문 앞을 둥글게 돌을 쌓아서 방어전투에 최대 한 유리하게 설계하였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왜놈들의 노략질이 얼마나 심했는지, 조선 태종 때부터 서해안 지방에 읍성을 쌓아서, 왜놈들이 쳐들어 오면, 백성들, 관리, 군졸들이 모두 읍성에 들어가서 방어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랑을 거치면서, 읍성이 방어에 약하는것을 알게되었으며, 이후 산성에 힘쓰게 되어 숙종때에는 조선에 약 400여개의 산성이 있게 되었습니다.

 

면천읍성과 가까운 읍성은 해미읍성이 있습니다.

 

▼ 면천읍성은 둘레 1,564미터, 적대(치성) 7개, 옹성 1개, 여장 56개, 우물 3개소와 동헌, 객사 등 8개의 관아 건물이 있었던 행정의 중심이며, 군사적인 방어기지였습니다.

 

▼ [자료:당진신문] 면천읍성을 그린 조선시대의 그림지도입니다. 면천읍성은 내부에 주로 관아건물이 대부분이서, 민가는 대부분 읍성밖에서 농사를 짓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읍성 안으로 모여서 방어전투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 면천읍성의 복원계획을 그림으로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마도 이 그림대로 복원을 하려면 30년 이상은 걸릴 것 같습니다.

 

복원계획도를 자세히 보면, 읍성을 2 등분하여 북쪽지역은 관아와 군자정, 공원등으로 꾸미고, 남쪽지역은 상가건물이나, 테마건물로 채울 계획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읍성내부에 상업시설이나, 테마시설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 조선시대 읍성의 기능은 평소에는 관아의 건물과 소수의 상점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민가들은 거의 읍성밖에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읍성을 복원할 때에는 해미읍성처럼 읍성 내부에 건물들을 최소화 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 면천읍성의 정문인 남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먼저 옹성을 통과해야 합니다

 

▼ [자료사진] 옹성의 구조를 하늘에서 보겠습니다. 성문 앞으로 모여든 적군들을 옹성 위에서 공격하도록 하였습니다

 

▼ 남문의 명칭은 원기루(遠寄樓)이며, 면천읍성의 정문입니다.

 

▼ 복원된 성문(남문)의 내부에서 보는 보는 모습인데, 성루(城樓)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네요... 복원을 할 때 좀 더 세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 참고로 해미읍성(서문; 지성루)에서 보면 성루에 오르는 계단이 잘 복원되어 있습니다.

 

▼ 성의 내부에서 보는 남문의 모습은 어딘가 좀 어색하게 막 쌓아 놓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정문은 보통 홍예형태로 쌓는데, 그냥 일반문처럼 복원을 하였습니다. 

 

▼ 원기루(남문)는 여름에 주민들의 최고의 쉼터입니다

 

▼ 여기까지가 2014년에 복원된 구간이며, 성 내부로 드나드는 길로 성곽은 끊어져 있습니다

 

▼ 길 옆으로 2023년에 복원된 성곽이 이어집니다. 

 

▼ 면천읍성에는 7개의 치성(적대)이 있었으며, 현재는 3개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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