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온사는 조선시대 과천현의 관아에 딸린 객사였습니다. 객사란 왕명을 받들어 지방으로 출장업무를 하러가는 관리의 숙소의 기능이 있습니다만, 숙소의 개념 보다는 궐패와 전패를 모셔놓고 왕이나 왕비의 생일 · 초하루 · 보름에 향궐망배를 올리던 곳으로 어느 정도 규모의 마을에는 객사가 있었습니다
과천현에 처음 객사를 지을때는 인조27년(1649)이었으며, 현종7년(1666)에는 기존 객사의 서쪽에 객사를 하나더 지었는데,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화성시) 참배를 다니면서 과천현의 객사에 머물다가 객사동헌은 부림헌, 객사서헌은 온온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의 온온사는 1986년 12월 12일 낙안객사를 본떠서 해체 복원한 것입니다
※ 경기도지정유형문화재 제100호
※ 지정년월일: 1980년 6월 2일
※ 소재지: 과천시 관문동 107-5
▼ 온온사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온온사는 과천시 건강가정 지원센터의 건물 뒤에 있습니다.

▼ 고즈넉한 숲속에 들어 앉은 온온사의 주변은 조선시대 과천현의 관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 과천현의 관아지였다면 수많은 관리들이 업무를 보던 건물과 각종 창고들이 있었을것인데, 객사만 남아 있습니다. 지금의 온온사는 옛 온온사의 건물형태를 알수 없어 전남 승주군의 낙안객사를 본떠 정면 9칸,측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 중앙에 맞배지붕을 얹어 놓은 형태로복원한 것입니다.

▼ [자료:지역N문화] 하늘에서 보는 온온사의 모습입니다.

▼ [자료:문화재청] 온온사를 복원할때 참고한 낙안객사입니다. 대부분의 객사의 형태는 대개 비슷합니다



▼ 객사의 기본 형태는 대개 비슷한데, 가운데는 지붕이 높은곳은, 전패를 모시는 곳이며, 우측은 우익실, 좌측은 좌익실이라고 합니다.


▼ [자료:서울포스트] 1960년대 과천면사무소의 모습입니다. 1932년에 객사를 헐어서 현관식 지붕이 있는 일본풍의 모습이며, 객사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 온온사의 현판를 보면 위쪽에 어필(御筆)이 보이는 임금의 글씨 즉 정조의 글씨라는 것입니다

▼ [자료:서울포스트] 1920년대 과천공립보통학교(초등학교)의 옆에 객사가 보이는데, 객사동헌이었던 부림헌으로 보입니다 .

▼ 객사의 중앙은 정청이라고 하는데,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놓는 곳입니다

▼ [자료:문화재청] 객사의 중앙에 놓이는 전패와 궐패입니다.

▼ 부림헌 현판에도 어필 글씨가 보입니다. 정조의 글씨라는 것이며, 부림헌은 인조때 지어진 동쪽의 객사로서, 정조가 다시 지은 객사의 이름이며, 정조 이전에는 무슨 이름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중앙 관리들이 머물던 객사, 즉 방입니다


▼ 과천 현감들의 공덕비이며, 관문리 길옆에 흩어져 있던 공덕비를 온온사에 모아 놓은 것이며, 모두 15기 입니다



▼ [자료:지역N문화] 하늘에서 보는 공덕비군의 모습이며, 우측의 고목은 약 600년된 은행나무이며, 과선시의 보호수입니다. 이 은행나무는 무학대사의 수제자 '열'이 과주(과천의 옛 이름)의 치소를 이곳에 정하면서 기념식수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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