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은 조선후기의 이궁이었고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서 서궐이라고 불렸습니다. 1617년(광해군9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15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경희궁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집이 있었는데, 이곳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 터를 몰수하고 왕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처음에는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1760년(영조36년) 경희궁으로 바뀌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탄 후 대원군이 중건하기 전까지는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서궐인 이곳 경희궁이 이궁으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이곳 경희궁을 이궁으로 사용하였는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경희궁의 관리 주체인 서울시에서는 1987년부터 경희궁지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 등 정전지역을 복원하여 2002년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사진에 대한 내용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에 있던 건물의 상당수를 옮겨갔으며, 특히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본격적인 수난을 맞이하였다. 1910년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숭정전 등 경희궁에 남아있던 중요한 전각들이 대부분 헐려 나갔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경희궁은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 경희궁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서 서궐이라고 하였으며, 전각들의 배치에 대한 자세한 위치가 서궐도라는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 경희궁은 덕수궁 뒷편에 있습니다. 덕수궁을 먼저 보고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서 걸어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면 경희궁은 서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서궐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답니다.
▼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은 원래 금천교 동쪽, 즉 현재의 구세군회관 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1932년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흥화문을 떼어 갔으며. 광복 이후에 박문사는 폐지되고 그 자리에는 영빈관에 이어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그 정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988년 경희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흥화문을 경희궁터로 옮겨 왔는데 원래의 자리에는 이미 구세군회관이 세워져 있어서, 현재의 위치에 이전하여 복원하였습니다.
▼ 흥화문에 들어서면 한가로운 길옆에 표지석이 하나 보입니다
▼ 숭정문앞 공터에는 넓다랗게 비어 있는데, 숭정문 월대 보다 높게 보이는 것이 아마도 바닥에 콘크리트 구조물이라도 있는듯이 보입니다.
▼ 숭정문은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경희궁에 대한 현장교육을 하고 계시는데, 학생들도, 나중에 크면 경희궁이 일제에 의해 망가진 역사를 더 잘 알게 될것입니다.
▼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으로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진 곳입니다. 특히 경종, 정조, 헌종 등 세 임금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숭전전은 경희궁 창건공사 초기인 1618년(광해군 10)경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로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건물을 일본인 사찰에 팔았는데,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 위치의 숭정전은 경희궁지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위치에 발굴된 기단석 등을 이용하여 복원한 것입니다. 숭정전 내부 당가에 용상을 설치하였고 그 뒤로 곡병과 일월오봉병을 두었습니다. 우물천정에는 마주보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을 새겨두었습니다.
▼ 문정전을 둘러싸고 있는 행각의 모습입니다. 경희궁의 일부만 복원해서 규모가 작아 행궁만도 못한 궁이기에 경희궁터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 문정전의 창살모양을 담아 보았습니다. 이렇게 큰 궁에 오다 보면 커다란 건물에 압도되어 작은 구성물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잘 보면 작은 것 에 대한 정성도 세심하게 만들어졌다는 것 을 알게 됩니다.
▼ 궁궐의 지붕에 보면 보이는 잡상들입니다.
▼ 문정전의 오른쪽 방향에서 행각과 문정문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 문정전뒤의 자경문으로 오르는 돌계단의 소멧돌의 화려한 문양의 모습입니다.
▼ 자정전으로 들어가는 자정문입니다.
▼ 자정전은 경희궁의 편전으로서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입니다. 숙종이 승하한 후에는 빈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하기도 하였습니다.
1617~20년(광해군 9~12) 사이에 건립되었으나, 일제가 훼손하였으며, 서울시에서는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자리에 <서궐도안>에 현재의 건물을 복원하였습니다. 자정전 서쪽에는 발굴을 통하여 행랑의 바닥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돌이 발견되었기에 발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여 복원하였습니다.
▼ 자정전의 옆문으로 나오면 서암이 있는 공터에 나옵니다.
▼ 서암은 굴모양의 입구가 보이고 내부에서는 물이 조금씩 나오는데 샘 정도는 아닙니다.
▼ 서암에서 바라보는 자정전이며 오른쪽은 태령전입니다.
▼ 자정전 뒷쪽의 답장에는 홍매화가 이제 꽃잎을 피우기 시작하였습니다.
▼ 영조의 어진이 보존되어 있는 태령전이고. 어진은 모사품인것으로 보입니다.
▼ 아들인 사도세자가 자기보다 더 나은 왕이 되기를 바랬던 영조는 너무 엄격함이 부자간의 비극을 불렀는지도 모릅니다.
▼ 서울역사박물관 앞의 금천교입니다. 금천교는 왕궁의 정문을 지나면 반드시 있는 다리인데, 서울역사박물관앞에 있다는 것은 이자리가 경희궁의 정문자리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난간의 돌짐승들이나 홍예 사이에 새겨진 도깨비 얼굴은 대궐 바깥의 나쁜 기운이 궐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상징성을 띠는 것으로. 1619년(광해군 11)에 건립되었던 것을 일제가 매몰시켰지만, 서울시에서는 2001년 발굴을 통하여 발견된 옛 석조물을 바탕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습니다.
▼ 원래의 흥화문은 현재 구세군회관 건물의 자리에 있어서 부득이 지금의 경찰박물관 옆자리에 복원하였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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