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의 연회장소였던 경회루(慶會樓)는 큰 연회를 개최하거나, 또는 외국의 사신들을 접대하던 곳 이었습니다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누각이며,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던 경회루입니다.
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지만 1412년(태종12)에 연못을 크게 확장하고 누각도 크게 새로 지으면서 이름을 경회루라고 하였습니다. 이후 성종때 건물이 기울어져 허물고 다시지었으며, 임진왜란때 불에 타서 방치되었다가 고종4년(1867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습니다
- 출처는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입니다
▼ 댓글에서 자시문과 이견문의 현판이 뒤바뀐 내용을 찾아 보니 몇년 전 에도 문의 현판이 바뀌어서 어떤분께서 관리소에 알려서 원래대로 문의 현판이 달렸는데, 이번 2018년 4월에 가본 경희루의 출입문의 현판이 또 잘 못 달렸습니다. 아래 그림의 문의 이름이 정상이며 현재는 자시문과 이견문의 현판이 서로 바뀌어 달려있습니다. 하향정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 이 아니고, 이승만 대통령 개인이 만든 정자입니다.
▼ 경복궁의 근정전의 행랑 중간에서 경회루 앞의 수정전 앞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 벚꽃이 한창이던 4월에 영추문 방향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문의 구조는 건춘문, 신무문과 동일하게 보입니다.
▼ 영추문을 당겨서 담아 보았습니다.가을을 맞이한다라는 뜻으로 영추문(迎秋門) 이라고 하였고,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하였답니다. 주로 관료들이 드나들던 문이었답니다.
▼ 버드나무에 가려진 경회루는 한눈에 봐도 크기에 놀랍니다.
▼ 수정전은 세종때는 집현전으로 사용되면서 세종28년(1446년)에는 훈민정음을 창제하기도 했던 곳 이며, 고종4년(1867년)에 재건 되면서 수정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없지만 수정전 주변이 궐내각사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 경회루의 연못의 크기는 남북으로 113m, 동서로 128m의 커다란 규모입니다.
▼ 경회루의 서북쪽 담장옆에는 하향정(荷香亭)이 있는데, 경회루가 지어질 당시 부터 있었던 건물은 아니고 1959년에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서 지어졌다고 합니다.
우측에는 작은문이 보이는데 필관문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왕궁에 왜 개인의 정자를 지으라고 하였을까? 이승만 대통령은 여기서 프란체스카 여사와 낚시를 즐겼다고 하네요...
하향정은 개인적으로 철거하는 것 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경복궁의 복원 기준이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던 싯점으로 한다면 말입니다.
▼ 하향정이 대통령 개인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정자라고 알고 나니, 꼭 그대로 둬야 하나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 동쪽에서 경회루에 드나드는 문의 3개중 하나인 이견문입니다. 아래 댓글이나, 자료에 의하면 경회루 남쪽으로 부터 자시문, 함홍문, 이견문순으로 되어 있는 것 이 맞다고 합니다, 사진상으로는 이견문이 남쪽에 있는데, 문의 현판이 자시문과 바뀌었습니다.
▼ 중간에 있는 함홍문이며, 현재 경회루 특별관람대기장소입니다. 주로 왕족, 왕자들이 드나들었습니다
▼ 함홍문에서 보는 경회루의 돌다리입니다. 함홍문은 고종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 자시문(資始문)은 자료상으로는 봤을때는 남쪽에 있는 것 이 맞는데 어찌 된것인지 북쪽에 문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견문과 현판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 이견문의 안쪽으로 보는 모습이며, 돌기둥에는 왼쪽에 코끼리, 오른쪽에는 형태를 알 수 없는 조각이 보이는데, 6.25 한국전쟁때 총알에 맞아서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 경회루 북쪽에서 보이는 만시문(萬始門)입니다.
- 끝 -
'▣ 역사.문화재.사찰 > 궁궐,행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복궁(8)-집옥재,신무문,태원전 일원 (0) | 2018.05.08 |
---|---|
경복궁(7)-건청궁, 향원정 일원 (0) | 2018.05.08 |
경복궁(6)-자경전, 집경당, 함화당,장고 일원 (0) | 2018.05.07 |
경복궁(5)-동궁전,소주방 일원 (0) | 2018.05.07 |
경복궁(4)-교태전,아미산 일원 (0) | 2018.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