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경전은 1867년(고종4년) 경복궁 재건 당시에 흥선대원군이 고종의 왕위계승에 결정적 역활을 했던 신정왕후(24대 헌종의 母)를 위해서 지어준 대비의 침전입니다.(신정왕후는 추존왕인 익종의 비로서, 효명세자의 비입니다)
▼ 소주방을 나와서 자경전으로 향합니다. 자경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만세문(萬歲門)이라고 합니다. 오랜세월 만수무강하시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 만세문은 자경전으로 드나드는 대문인데 보통은 삼문이지만 자경전은 문이 두칸입니다.
▼ 이곳은 자경전입니다. 임금의 어머니를 위한 공간이고, 자경은 ‘어머니에게 경사가 있기를’이라는 뜻입니다. 조선은 유교사회로, ‘효’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습니다.
자경전은 바로 그런 효도의 상징으로 지은 전각입니다. 자경전에는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이 많습니다. 우선, 중전의 처소에 있는 담만큼 아름다운 꽃담이 있고, 자경전 뒤뜰에는 곱게 구운 벽돌 위에 십장생 무늬를 얹은 아름다운 굴뚝이 있습니다.
조선은 여성들의 정치활동을 엄격하게 금했지만 예외인 경우가 있었으니 바로 대비의 “수렴청정”입니다. 어린 임금이 보위에 오르면 왕실 최고 어른 자격으로 국정을 처리하였습니다.
조선 역사에서 다섯분의 대비가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자경전은 고종임금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고종임금을 양자로 삼아 왕위에 오르게 해 준 신정왕후를 위해서 만든 전각입니다.
▼ 자경전의 동쪽에 연결된 누각인 청연루입니다. 이 청연루는 나이든 대비(신정왕후)가 여름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서 누각형태로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왕위에 앉히기 까지 헌종의 어머니(효명세자비)인 대비인 조씨의 역활이 크다고 하는데, 그당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와 부정부패로 온 나라가 어지러울때 조대비와 흥선대원군의 정치철학이 상통하여 정치개혁의 전권을 주는등 개혁의 기틀을 만들어준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신정왕후였습니다만, 풍양조씨 일가의 부패도 안동김씨 일가의 부패만큼 심했다고 합니다.
▼ 자경당과 청연루를 사이에 두고 툇마루로 연결되어 있는 협경당입니다. 주로 상궁과 궁녀들이 거처하는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 자경당 담장 뒤로 높게 보이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자경전의 뒷쪽으로 가봅니다. 마주보는 건물은 대비의 침실인 복안당입니다.
▼ 협경당의 뒷모습입니다.
▼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자경전의 굴뚝입니다. 비바람에 굴뚝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붕을 만들었습니다.
▼ 협경당 앞마당에서 청연루를 바라보며 담은 모습입니다.
▼ 자경전의 동쪽으로는 드나드는 문이 두개가 더 보이는데, 문의 이름이 걸려 있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 자경전과 교태전 사이로 올라 가서 함화당과 집경당으로 가봅니다. 국립민속박물관터에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재수합(齋壽閤)입니다. 원래는 경복궁 만경전(萬慶殿)에 딸린 부속건물이었다가. 1917년 창덕궁에 발생한 화재로 창덕궁을 복원하는 부재로 사용하기위해 만경전과 그에 딸린 부속건물들이 헐리게 되었는데, 재수합만 남게되었습니다.
▼ 집경당 동쪽문인 봉양문(鳳陽門)입니다. 집경당과 함화당은 현재 복원중인 흥복전의 약간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888년 고종이 건청궁에서 생활하던 고종이 드나들기 편한 전각을 고쳐서 별침전으로 만들었고 함화당이라고 하였답니다.
▼ 문화재청포털의 경복궁가이드에서 가져온 함화당과 집경당의 전각배치도 인데, 셀제 건물의 배치는 좀 다릅니다. 고종때 만들어졌다가 내각회의를 열거나, 외국사신들을 접견 할 때 쓰이기도 했으며, 1917년 경복궁 대화재도 피했으며, 일제때는 조선총독부 박물관 사무실로 쓰이다가 최근에 주변 행각들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되었습니다.
▼ 흥복전은 현재 복원작업중입니다.흥복전은 왕의 후궁들이 살던 공간인 빈궁(嬪宮)이었습니다. 궁궐 내 여성 내명부에 적절한 소임을 주고 독립된 건물 채인 각 전(殿)에 배속시키는 본부 역할을 했으며, 외국 사신을 만나는 편전으로도 활용됐습니다.
신정왕후 조대비(趙大妃, 1808~1890년) 1)가 이 곳에서 승하하였으며, 1917년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을 중건하기 위해 흥복전 일곽이 철거됐으며,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는 일본식 정원을 조성하였다가 현재는 복원작업중이며, 2~3년후에 복원된 흥복전을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 협경당으로 들어가는 문인 봉양문과 향명문입니다.
▼ 집경당으로 들어가는 향명문입니다
▼ 집경당(緝敬堂)의 내부 모습입니다. 내전(內殿)의 침전(寢殿)이었다고 합니다.
▼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의 사이에 있는 아름다운 월문인 계명문(啓明門)이 있습니다.
▼ 집경당과 함화당은 당장을 사이에 두고 별개의 건물처럼 보이지만 복도로 이어지고 있는 구조입니다.
▼ 함화당은 집경당과 건물 구조가 아주 닮은 모습입니다.
▼ 함화당에서 집경당 방향으로 전부 담아 보았습니다.
▼ 함화당 앞에서 서쪽으로나가는 문입니다.
▼ 함화당을 나오면 깊고 긴 도랑이 나옵니다. 북악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르는듯 합니다.
▼ 영지문은 장고(음식에 쓰이는 장)로 통하는 문으로 장고의 문인 예성문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 함화당과 집경당의 뒷쪽 담장인데, 문이 두개 보입니다.
▼ 창무문 앞에 카다란 돌이 보입니다.
▼ 자료를 찾아보니 하지(荷池)라는 돌로 만든 연못입니다. 투명 가림판으로 덮어 놓았습니다.
▼ 창무문은 함화당의 뒷편에서 향원정으로 나가는 문입니다.
▼ 응복문은 집경당의 뒷쪽에서 향원정으로 드나드는 문입니다.
▼ 응복문 뒤로는 집경당입니다.
▼ 집경당과 함화당이 난란히 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 집경당의 후문격인 영지문입니다. 영지문의 다리를 건너면 장고의 예성문입니다.
▼ 장고로 들어가는 예성문입니다만, 내부 관람은 문이 잠겨 있어서 못하였습니다.
▼ 장고의 담장입니다. 외국인들이 입었는데도 한복은 역시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주는 옷입니다.
▼ 장고의 남쪽에는 신거문이 있는데, 경회루에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으로 가거나, 장고, 태원전, 집옥재, 건청궁, 향원정으로 드나들 수 있는 문입니다.
▼ 멀리 국립민속박물관의 모습을 담아 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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