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구운동에 있는 국립농업박물관의 농업관(1)의 전체적으로 보고 나서, 출구를 나와 복도를 따라서 가면 두 번째의 농업관(2)이 있습니다.

 

▼두 번째 농업관(2) 전시실 입구에서 보는 모습입니다. 종자의 보관방법이 보입니다

 

▼ 농산물의 갈무리가 끝나면, 각종 곡식물을 저장하여 겨울에 대비하는 조상들의 지혜로운 기구들을 보겠습니다

 

▼ 대나무를 엮어서 만들고 그 위에 이엉을 씌운 나락뒤주이며,  나락은 때때로 곡식이 필요할 때 꺼내서 빻아서 먹었습니다.  점차 판자로 만든 저장소를 만들어서 보관하는 방법으로 바뀌었습니다

 

▼ 뒤주는 보통 쌀을 대량으로 보관했기 때문에 보기에 익숙한데, 채독은 싸리를 엮어서 만들며, 마른 곡식인 감자, 고구마들을 보관하였습니다. 나무독은 강원도에서 김치등을 보관하였습니다.

 

▼ 쌀 항아리는 지금도 흔히 사용되는 쌀 저장기인데, 모양은 다르지만, 대부분은 항아리에 보관하였습니다. 나무 냉장고는 처음 보는데, 내가 알던 냉장고라는 것은 김치를 항아리에 담아서 우물 속에 담가두는 것이 일반적인 냉장고였습니다

 

▼ 빻고 찧는 도구로서, 절구, 매통, 맷돌등이 보입니다

 

▼ 전통적인 찧는 도구로서 돌절구, 나무절구등인데, 중앙의 남방애는 주로 제주도의 나무절구방아입니다

 

▼ 연자방아는 마을에 하나씩은 있었는데, 긴 장대를 소에 매달아서 둥굴게 돌게 하면 곡식이 빻아지는 도구입니다

 

▼ [자료사진:헤르만산더] 일본주재 독일대사관 무관이었던 헤르만산더가 조선여행중에 일본사진사를 채용했는데,  그때 찍은 사진중에 연자방아의 모습입니다.

 

▼ 물의 힘을 이용해서 방아를 움직여서 곡식을 빻는 나무 기계이며 물레방아라고 합니다. 사람의 발로 눌러서 빻는 방아는 디딜방아라고 합니다. 디딜방아를 물레에 연결시킨 것이 물레방아입니다.

 

▼ 매통은 곡식을 나무통에 조금씩 넣고 통에 달려 있는 손잡이을 잡고 좌, 우로 돌려서 곡식을 빻는 도구인데, 나무로 만든 맷돌입니다

 

▼ 일본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들여온 대단히 발전된 도정기계입니다. 일본 지주들은 정미소를 만들어서 대량으로 쌀을 빻아서 일본으로 팔았습니다.

 

▼ 일제강점끼 때의 정미소 내부사진인데, 앉아 있는 조선인들은 미선공(米選工)이라고 하며, 미선공들은 쌀이 도정된 후 파이프를 통해서 내려온 쌀의 이물질을 걸러내는 일을 하였습니다.

 

미선공들이 이물질이 섞인 쌀을 가랭이 사이로 몰래 가져가는 일들이 많았는데, 조선인 감독들이 보통은 그냥 눈감아 주기도 했지만, 악질 감독들은 몸수색을 하면서 성추행은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 방앗간(정미소)의 동력은 디젤 발동기였습니다. 기다란 축에 풀리를 달아서 벨트만 연결하면 동력이 전달되는 구조입니다. 어릴 적에 방앗간이 집옆에 있었는데, 디젤 발동기는 얼마나 소리가 큰 지 365일 매일 시끄러웠습니다

 

▼ 방앗간이 지금은 현대식 도정기계가 가득한 정미소로 바뀌었는데, 보통은 지역의 농협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는데, 보관, 건조, 도정등을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미곡종합처리장이라고 하며  RCP[Rice Processing Complex)라고 합니다.

 

▼ 소형도정기도 상품으로 판매가 되며, 보통 소량으로 도정할 때 쓰입니다.

 

▼ 농사가 끝나면 보통은 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농부들은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주로 마을 사랑방에 여럿이 모여서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는데, 시간을 보냅니다만, 노름(도박)도 심해서 파산하는 분도 가끔 생기는 때입니다.

 

▼ 보통은 새끼틀이라고 하는데, 제승기라고도 합니다. 두 개의 나팔처럼 생긴 입구에 볏짚을 일정한 갯수로 집어넣고, 발판을 교대로 밟으면, 자동으로 꼬이면서 원통에 자동으로 감깁니다.

 

가마니틀은 새끼줄을 홈이 파인 틀에 끼워 넣고, 볏짚을 새끼줄 사이로 교대로 집어넣은 다음 나무틀을 내리치면 차곡차곡 볏짚이 쌓여 거적이 만들어지는데, 거적을 포개서 꿰매면 가미니가 만들어집니다.

 

옛날에는 한 가마가 80㎏이었는데 어찌나 무거운지, 보통 남자들도 들기 힘든 무게여서 방앗간의 머슴들 중에 허리 고장 없는 머슴들이 없을 정도로 볏가마를 옮기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무거운 쌀가마니는 80㎏에서 점차 40㎏ -> 20㎏ -> 10㎏ -> 5㎏ 순으로 점점 적어졌습니다

 

▼ 다음은 운반도구를 알아보겠습니다.

 

▼ 지게는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매우 유용한 운반도구였습니다. 어릴 적에는 소풀을 베어서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기도 했는데, 지게가 무거울 때는 어깨가 엄청 아팠는데, 어깨가 찢어지는듯한 고통이었습니다.

 

▼ 길마는 소의 등에 얹고, 양쪽으로 짐을 얹어서 이동하는 도구입니다.

 

▼ 옹구는 소의 등에 얹어서 양쪽에 거름(퇴비)을 넣고 논밭으로 이동후에 아랫부분을 열어서 거름(퇴비)을 떨어 트리는 도구입니다.

 

▼ 각종 달구지입니다.

 

▼ 이 자전거는 무척 큰 짐을 실을 수 있는데, 보통은 쌀 상회, 막걸리 양조장에서 배달용으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지금의 자거전거처럼 변속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힘들지만, 시골에서 이 만한 운반도구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보통은 쌀 한가 마, 막걸리 4통정도는 기본으로 실었으며,  어릴 적에 이 자전거로 타는 법을 배웠는데, 많이 자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 1970년대 초반에 국가적으로 이 경운기를 보급하였는데, 판매가의 50%는 국가보조금이 있었습니다. 이 경운기가 보급되면서 소는 쟁기나 달구지를 떼어 버리고 육우로 사육되었습니다.

 

이 경운기는 엔진소리의 특성상 딸딸이라고 하였으며, 사용 중에 안전사고도 많았습니다

 

▼ 곡식의 무게를 재는 저울과 곡식의 부피를 재는 되빡, 말등이 보입니다. 

 

▼ 옛날의 소는 거의 논이나 밭등을 갈거나, 운반수레등을 끌 때 쓰려고 사육을 하였으며, 말은 주로 마차를 끄는데 이용되었으며, 대부분 식용으로 키우지는 않았는데, 경운기나, 트랙터가 보급이 되면서, 정육용으로 사육이 되었습니다

 

▼ 소를 키우면서 삼시세끼를 챙겨줘야 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 여자들에게는 베를 짜는 일이 큰일이었는데, 농촌이어도 쉽게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 한지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이는 중국에서 개발되어 한국,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아시아 3국(한국,중국,일본)의 종이 중에서 한지의 품질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만, 닥나무 껍질을 이용해서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소규모 수준의 가내 수공업정도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 약초를 캐는 도구와 한약재를 담아 두는 약함, 한약재의 가공과 무게를 재는 저울등이 보입니다. 현대의 한의사들도 이제 이런 도구는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 이제 농업은 드론이 파종하고, 농작물의 발육상태를 관찰하고, 방제까지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 농업이 구시대의 산업에서 벗어나 미래의 산업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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