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후궁이자, 왕위에 오르거나, 추존된 왕들의 생모들이 잠들어 있는 원(園)이 여러개가 있는데 그중에서 먼저 소령원(昭寧園)을 알아봤습니 소령원(昭寧園)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 숙빈최씨의 원(園)입니다.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소령원(昭寧園)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 화경숙빈 최씨의 원(園)입니다. 파주에 있습니다. 숙빈 최씨는 숙종과의 사이에 3남을 두었으나, 둘째인 연잉군(영조)만 남고 일찍 죽었습니다.
▼ 숙종의 가계도를 보면 숙빈 최씨는 숙종의 두번째 후궁이었습니다. 숙빈 최씨는 숙종과 사이에 3남을 두었으나, 1남과 3남은 일찍 죽었고, 둘째 아들 연잉군만 남아 21대 왕위에 오르니 그가 영조 입니다.
소령원昭寧園(영조 생모 숙빈)
- 위치 : 경기 파주시 광탄면 소령원길 41-65
- 원의 형식 : 단분
- 원의 조성 : 1718년(숙종 44), 1753년(영조 29)
- 소령원의 구성
소령원은 조선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1대 영조의 사친인 숙빈 최씨의 원이다. 원의 구성은 왕릉의 형식과 비슷하게 조성되었다.
소령원 입구에는 영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 세운 신도비각이 있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시묘살이를 했던 터가 남아 있다.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향로와 어로,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있다. 비각은 두 개가 있는데 1비는 1744년(영조 20)에 소령묘(昭寧墓)로 추존한 비, 2비는 1753년(영조 29)에 소령원(昭寧園)으로 추존한 비이다. 원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상석, 묘표석, 석양과 석호 1쌍이 배치되어 있다. 석마 옆에는 중배설석이라는 석물이 있으며, 묘표석은 숙빈 최씨가 세상을 떠난 후에 세운 표석이다.
- 소령원의 역사
1718년(숙종 44)에 숙빈 최씨가 세상을 떠나 처음 숙빈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영조가 즉위한 후 1725년(영조 1)에 신도비를 세웠으며, 1744년(영조 20)에 묘의 이름을 소령묘라 하였다. 그 후 1753년(영조 29)에 왕의 사친 추존제도가 성립된 후에 원으로 격상하여 이름을 소령원이라 하였다.
- 숙빈 최씨(淑嬪 崔氏) 이야기
숙빈 최씨(재세 : 1670년 음력 11월 6일 ~ 1718년 음력 3월 9일)는 본관이 해주인 증 영의정 최효원과 남양 홍씨의 딸로 1670년(현종 11)에 태어났다. 1676년(숙종 2)에 7세의 나이로 궁녀로 입궁하였고, 1693년(숙종 19)에 숙종의 후궁이 되어 숙원(淑媛)이 되었다. 숙의(淑儀)의 품계에서 1694년(숙종 20)에 영조를 낳았으며, 귀인(貴人)을 거쳐 1699년(숙종 25)에 숙빈이 되었다. 1701년(숙종 27)에 인현왕후 민씨가 세상을 떠난 후 희빈 장씨를 자진시킨 무고의 옥을 고변(희빈 장씨가 왕후를 무고한 일)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1718년(숙종 44)에 창의궁 사저에서 49세로 세상을 떠났다. 1753년(영조 29)에 왕의 사친으로 추존되어 시호를 화경(和敬), 궁호를 육상궁(毓祥宮), 원호를 소령원으로 추봉하였다.
▼ 소령원의 수복방 자료사진입니다.
▼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전에 시묘살이를 했던 터가 남아 있습니다.
▼ 소령원의 1비는 1744년(영조 20)에 소령묘(昭寧墓)로 추존한 비입니다.
▼ 소령원의 2비는 1753년(영조 29)에 소령원(昭寧園)으로 추존한 비입니다.
▼ 소령원 입구에는 영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 세운 신도비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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