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릉(현정릉)의 자료를 살펴보는 이유는 현릉(玄陵;공민왕)과 정릉(正陵;노국공주)이 조선왕릉의 조성에 교과서적인 역활을 하였기 때문이며,  여러 사진자료를 비교해 봐도 다른 고려의 왕릉과는 매우 다르게 위엄있고, 거대하며, 정교한 석재기술을 뽐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릉이 공민왕릉(현정릉)를 모방하였다는 것은 조선왕릉 헌릉(태종과 현경왕후)를 보면, 매우 비숫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현릉과 정릉은 고려의 31대 공민왕(恭愍王)과 노국공주의 능침입니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우측은 노국대장공주의 정릉(正陵)이며, 좌측은 공민왕의 현릉(玄陵)입니다

 

경기도 개풍군 토성면 여릉리에 있으며, 현릉과 정릉을 묶어서 현정릉(玄正陵)이라고 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개성역사지구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현정릉(玄正陵)의 역사를 보면,

노국대장공주가 1365년 2월 15일(음력,공민왕 14년)에 승하하고, 1365년 4월 4일에 정릉(正陵)에 장사지냈으며, 9년 후인 1374년에 공민왕이 승하하자, 1374년 10월 28일에 공민왕을 정릉의 서쪽에 장사 지내고 현릉(玄陵)이라고 하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조선왕릉의 호칭과는 다르게 고려왕릉은 안장자별로 능호를 지었습니다

 

※ 현정릉의 사진 자료는 구글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으며, 여기에 인용된 사진자료는 위키백과, 조선향토대백과(네이버백과)에서 가져왔습니다.

 

※ 위키백과(네이버백과)

 



 

※ 위키백과(네이버백과)

▼ 혼유석을 바치고 있는 고석이며, 해치의 얼굴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 12지신상이라는 설명이 있으며, 복식(服式)을 보면 그 당시 고려의 옷 차람새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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