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화석정을 보고 며칠 지나서 파주 이이 유적(자운서원)을 그냥 지나친 생각에 아쉬워서 다시 파주에 왔습니다. 

파주 이이유적은 자운서원과 율곡 이이의 가족묘, 율곡기념관, 연수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율곡 이이 유적지의 기본은 자운서원인데, 자운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으며, 그나마 6.25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유적화 사업 지시에 의해서 건물들을 새로 지은 것입니다. 이때 강릉의 오죽헌도 유적화 사업에 의해 새로 꾸며졌습니다.


▼ 율곡 이이는 강릉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인식 때문에 파주가 본향이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파주에 여행을 와서 알게 되었으며, 자운서원을 포함하는 이이 유적지는 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찾는 사적지입니다. 출입문은 삼문으로 되어 있고 입장료는 1000원입니다.

 

▼ 유적 안내문의 내용은, 율곡이이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뛰어난 공부 실력자였으며, 조선 유학계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경기지역, 황해도 지역, 충정도지역의 유생들로 이루어진 기호학파를 형성하였으며, 사후에는 문묘(공자의 사당)에 배향(신주를 모심)되었습니다.

 

자운서원은 조선 광해군 7년(1615) 율곡이이의 제자들에 의해서 건립되었으며, 효종 원년(1650)에 자운이라는 현액을 하사 받았으며, 숙종 39년(1713)에는 선생의 제자인 김장생, 박세채를 추가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자운서원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정책에 따라 없어졌다가 1970년대에 복원하였습니다. 자운서원,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묘는 경기도 문화재이며, 유적지는 국가사적지가 되었습니다

 

▼ 이이 유적지는 이이선생과 신사임당의 동상으로 시작해서 신도비->자운서원->이이가족묘->율곡기념관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시간은 천천히 1시간 정도 걸립니다.

 

▼ 율곡이이선생과 신사임당의 동상은 서울 사직공원에 있다가 2015년 10월 10일에 율곡 이이 유적지로 이전이 되어 왔다고 합니다. 두 분은 지금까지도 너무 친숙하게 종이돈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 모자(신사임당,율곡이이)의 영정이 대한민국의 지폐에 나란히 들어 있는 것은 대단한 예우입니다

 

▼ 신도비는 보통 어떤 인물에 대한 일대기를 새겨 넣는데, 이이 선생의 신도비에도 일대기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 자운서원의 모습입니다. 광해군 7년(1615)에 세운 이 서원은 효종 1년(1650)에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사액서원으로 ‘자운’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숙종 39년(1713)에 율곡의 뒤를 이은 학자인 김장생(1548∼1631)과 박세채(1632∼1695)를 추가로 모셨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

 

그 뒤 서원 터에서 제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왔으나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새로 지은 것이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율곡선생, 신사임당 유적 정화기의 글씨가 보기가 어려워서 옮겨 보겠습니다

 

이곳 자운산 기슭에는 율곡 이이 선생과 그 부인 노씨와 부친 이원수 모친 사임당 등 여러 가족들의 분묘가 계시다.

선생이 가신지 삼십 년 뒤 광해군 7년(1615)에 이곳 유림들이 선생의 묘소 아래 자운서원을 창건했었고, 효종 원년(1650)에 위로부터 사액을 받았었다.

 

그로부터 수 백 년이 지나 대원군 때에 서원이 훼철 당한채 우거진 풀밭 위에 비바람만 불더니 1968년에 이르러 국고보조와 군민의 성금으로 서원과 삼문을 재건했으며, 다시 1973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한 분부로 묘역 전체를 정리하고 삼문을 새로 짓고 경내를 정화하여 빛나는 업적을 남겼으므로 여기 그 전말을 새겨 전한다. 1974년 5월

 

▼ 자운서원을 하늘에서 보는 모습입니다. 리플릿 자료에 건물의 명칭을 넣어서 알아보기 쉽게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서원의 모습이며, 향교의 구조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원은 사립 중고등학교, 향교는 공립 중고등학교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향교와 서원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 재실은 좀 멀리 떨어진 율곡기념관 옆에 있습니다.

 

▼ 자운서원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은 자운문(紫雲門) 현판(懸板)이 걸려 있습니다.

 

▼ 자운서원의 안내도이며, 외삼문을 지나면 유생들의 숙소인 입지재(동재)와 수양재(서재)가 보입니다. 유생들이 공부를 하는 강인당 뒤로 내삼문을 지나면 사당인 문성사가 있습니다

 

▼ 외삼문의 현판은 원래 자운서원으로 걸려 있었는데, 언제 부터인지 자운문(紫雲門)으로 바뀌었습니다.

 

▼ 자운문에 들어서면 좌측으로 수양제, 우측으로 입지재가 있으며 정면으로 유생들이 공부를 하던 강인당이 보입니다.

 

▼ 강인당 아래에는 유생들의 숙소가 동쪽과 서쪽에 있는데, 서쪽은 수양재이며 서쪽에 있어서 서재(西齋)라고도 합니다.

 

▼ 입지재입니다. 동쪽에 있어서 동재(東齋)라고도 하며, 오른쪽 방에는 신사임당영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수양재와 입지재에 걸려 있는 현판의 글씨는 백암 강사현 선생의 글씨입니다. 자운서원의 현판 글씨는 거의 백암 선생의 글씨입니다.

 

▼ 문성사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수양제와 외삼문(자운문) 입 지재입니다.

 

▼ 유생들이 공부를 하던 강인당입니다.

 

▼ 강인당 좌, 우로는 500여 년이 넘은 고목들이 대단한 근성을 근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강인당 왼쪽에 보이는 비는 자운서원 묘정비입니다.

 

▼ 이 묘정비(廟庭碑)는 숙종 9년에 세워졌는데, 6.25 전쟁 때 모든 건물이 불타 버렸지만, 묘정비만은 무사했다고 합니다. 6.25전쟁때 다행히 총탄 자국은 피했습니다. 묘정비는 자운서원의 내력을 적어놓은 비이며, 서원비(書院碑)라고도 합니다.

 

▼ 문성사로 들어가는 내삼문입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 문성사는 자운서원의 맨 뒤쪽에 있습니다

 

▼ 문성사는 율곡 이이 선생 그리고 이이의 제자인 김장생, 박세채 선생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입니다. 모든 서원에는 사당이 있으며. 향교에도 사당이 있는데, 사원과 달리 공자를 모시며, 모든 향교가 대성전이라고 합니다.

 

▼ [자료_자운서원] 율곡 이이 선생의 영정이 잘 안 보여서 자료사진을 인용하였습니다.

 

▼ 문성사의 내부는 이렇습니다.

 

▼ 사당에서 보면 사당 좌우로 망료대와 관세위가 보이는데, 관세위(盥洗位)는 제사를 받드는 제관들이 손을 씻는곳이며, 망료위(望燎位)는 제사를 받든 후에 축문을 태우는 곳입니다. 

 

▼ 사당이나 제사를 받드는 곳에 보면 보통은 향나무가 있습니다. 향의 재료를 얻으려고 심습니다 

 

▼ 문성사에서 내려다보는 내삼문입니다

 

▼ 제사를 끝내고 나가는 문입니다.

 

▼ 밖에서 담장 너머로 보는 자운서원의 내부도 아름답습니다.

 

▼ 이이 가족묘로 가는 길에 만나는 연못인데, 연꽃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 이이 선생의 가족묘도 담장을 둘러서 품격을 높였습니다.

 

▼ 이이 가족묘로 들어가는 문도 삼문으로 만들고 여현문(如見門)이라고 하였습니다

 

▼ 특이한 것은 출가한 누이의 가족들도 가족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들이나 딸이나 가리지 않고 가족이라는 개념이 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딸은 출가외인이라는 못된 풍습은 언제부터 심해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유교의 개념을 잘 못 해석한 일부 선조들의 잘못일 것입니다.

 

▼ 묘지로 올라가는 길은 숲 속의 왕릉으로 들어가는 길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 율곡 이이 선생의 가족묘 중앙부의 끝에서 보는 모습인데, 특이하게 율곡 이이 선생과 부인 곡산노씨의 무덤이 위, 아래로 있습니다.

 

▼ 율곡이이선생 부부의 묘를 옆에서 보는 모습이며, 부인 곡산노씨의 무덤이 뒤쪽입니다. 묘 석물들의 이끼를 벗겨내는 작업이 있어서 정면 사진은 못 찍었습니다.

 

▼ 율곡 이이선생의 묘 앞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이며, 조상의 서열 순으로 있지는 않아서 좀 의아했습니다.

 

▼ 율곡기념관은 율곡이이 선생의 일대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2층까지 전시관입니다

 

▼ 시간적으로 여유 있게 천천히 둘러보면 숲 속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입니다. 다만 단체로 오신 분들이 많을 때는 시끄럽지만 말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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