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3대산성중의 하나인 금성산성은 연대봉, 시루봉,노적봉,철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외성과 내성으로 성벽을 쌓았습니다.
1895년 제작된 금성진도(金城鎭圖)를 보면 동헌, 대장청,내아등 관청건물이 들어서 있었으며, 산성의 축조시기는 고려 우왕6년(1380년) 高麗史節要에 언급되고 있는점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말 이전으로 추정할수 있습니다.
주변이 절벽이라 접근이 어려운 특성 때문에 임진왜란때는 의병의 거점이 되었으며 1894년 동학농민혁명때는 혈전이 벌어져 각종 시설이 불타버려서, 남문인 보국문(외남문)과 충용문(내남문)만 완전 복원되고 동,서,북문은 아직 문루가 복원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또한 한국전쟁때는 성안에 있던 보국사가 불에 타 현재 주춧돌만 확인이되고, 현재의 모습은 최근에 복원(1995년~1996년)된 것이라고 합니다
- 성곽개요 : 전체성곽길이는 7,345m(외성:6,486m,내성:859m)이며, 사적 제353호로서 담양읍 용면 도림리와 금성면 금성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광주-전남관광포탈(http://www.namdokorea.com)에 자세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 답사코스:보국문->충용문->노적봉->철마봉->서문터->북문터->산성산->운대봉->북바위->동문터->내성->동자암->충용문이었으며, 성곽의 길이가 길고 지형이 험준하여 성곽의 복원비용과 복원기간이 만만치 않을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동자암 근처 능선에서 바라본 보국문(외남문)이며, 출입문겸,망루겸,전초기지등의 복합적 기능의 문루입니다.
▼ 충용문 공터에 있는 산성 안내도 및 답사코스를 표시한 그림이며,원안은 내성터입니다.
▼ 금성산성 들머리는 보국문이며, 주차장에서 조금만 올라오면 산성입구가 나옵니다 보국문으로 통하는 입구가 되겠습니다.
▼ 동학농민혁명군 전적비 ...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내용이며,농민혁명군의 못다이룬 꿈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 보국문(외남문)에 도착했습니다 성곽의 모양이 지금까지 보아왔던것보다 훨씬 옛스럽게 보여서 거부감이 적습니다. 성곽돌의 모양이 꾸밈이 없고 자연석 그대로 생긴대로 주어다가, 생각대로 쌓아놓은듯 허술한것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민초들의 끈끈한 결속력처럼 튼튼하게 보입니다.
▼ 보국문루의 모습이며 문루가 복원되어 있는 문은 남문(보국문,충용문)뿐입니다
▼ 보국문에서 바라본 충용문이며 내성의 성곽이 서문쪽으로 이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 충용문에서 바라본 보국문과 용도의 성곽(외성의기능)의 모습이 기가 막히게 복원이 잘되어 있습니다
▼ 충용문에서 이어지는 내성의 성곽에서 바라본 보국문(외남문)의 모습입니다
▼ 자! 이제 제2의 남문인 충용문(내남문)을 둘러보는데, 성의 정문역활을 하는 곳이라 복원을 잘해놓았습니다
▼ 충용문의 옹성에서 서문쪽으로 이어지는 내성의 모습이며 이또한 복원상태가 좋아 보입니다.
▼ 충용문의 옹성 위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문루의 모습이며, 충용문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말한마리가 겨우 통과할 넓이이며, 문루가 아담하게 아름답습니다.
▼ 충용문의 측면의 모습, 이또한 아름답습니다
▼ 충용문의 뒷쪽에는 넓은 터가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3개의 돌탑은 정유재란시 이천골에서 산화한 영혼을 위한 돌탑과 성을 쌓는과정에 희생된 민초들의 영혼들을 달래기 위한 돌탑들이라고 하며, 혹시 몰지각한 종교단체에서 미신의 숭배물이라고 부셔버릴까봐 걱정되기는 합니다.
- 이천골의 유래는 정유재란시 전투중에 숨진 시신의 수가 이천구가 넘었다 하여 이천골이라 한다
▼ 노적봉 방향으로 가는도중에 뒤돌아본 충용문과 옹성의 모습입니다.
▼ 노적봉으로 가는 성곽길은 성곽은 있으나 성가퀴는 복원이 안되어 있는 상태 입니다(성곽의 넓이는 약 3자 정도로 1m의크기다)
▼ 철마봉과 추월산 사이의 담양호입니다.
▼ 노적봉에서 철마봉으로 이어지는 성곽길은 좀 가파른 길입니다
▼ 철마봉을 내려서면서 바라보이는 서문터의 성곽, 일반적인 성곽이 아니고 마츄피츄를 보는것 같습니다
▼ 서문터의 계곡부근의 성곽은 일부가 많이 무너져 있습니다만,아직도 잘 버티고 있습니다
▼ 다른 문터의 옹성보다도 규모가 상당히 크다.이 또한 복원이 잘되어 있습니다(1995년도 복원)
▼ 서문터 옹성에 있는 돌에 光州라는 글씨가 각인되어 있는데 성을 정비할때 광주지방의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 가파른 산세의 지형에 계단식으로 상당히 두껍게 성곽을 쌓았고, 좌측에는 치성이 보입니다. 성곽의 두께에 비해서 성가퀴의 크기는 작게 느껴집니다. 성곽의 두께를 이렇게 두껍게 한 이유가 뭘까? 자연재해에 대비해 성곽을 미리 보호하기 위한 축성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성가퀴와 타구(화살을 쏘기위한 공간)의 모습도 보입니다. 성의 어느곳에서나 추월산을 만날수 있습니다
▼ 여기까지가 서문터 성곽이고 이제는 북문터로 가는 성곽길로 접어들었습니다
▼ 북문터로 가는성곽에서 바라본 담양호와 건너편 추월산입니다
▼ 많은분들이 성곽길을 따라 등산을 즐기고 있습니다
▼ 북문터에서 점심을 즐기는 등산객들,,, 쓰레기 안버리고 ... 깨끗하게 즐기시기를 ...
▼ 북문터에는 문루가 복원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북문터옆에 있는 옹성은 높아서 망루역할을 했을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 북문터의 바깥쪽에서 바라본 옹성의 모습입니다
▼ 송낙바위 갈림길인데 아마도 저 빈터에는 장대(將臺)가 있지 않았을까..추측해 봅니다
▼ 운대봉 가는길중에 산성산 방향의 성곽인데, 성곽위로 걸어 갑니다
▼ 북바위와 소나무가 썩 어울립니다.
▼ 북바위에서 뒤돌아본 운대봉성곽길입니다
▼ 운대봉과 북바위인데 바위이름의 유래는 알수없습니다
▼ 성곽길에서 멀리 강천사 계곡을 바라보는데.구장군폭포가 보입니다
▼ 이제 동문터에 도착했다 역시 문루는 복원되지 않았고, 성문벽 사이로 광덕산이 보입니다
▼ 동문터 옹성과 저멀리 보이는 북바위입니다
▼ 시루봉의 모습인데 안전시설물이 없어서 꼭대기까지는 못가보았습니다
▼ 내성동문인데 다른성과 달리 성안에 독립적으로 별도의 성이 있다는것이 특이한 구조의 성곽입니다.
▼ 내성의 동문터이며 성문 좌우의 성곽만 복원이 되어있습니다
▼ 내성성곽에서 바라본 철마봉입니다
▼ 내성의 성문인데 암문처럼 깊게 들어서 있습니다
▼ 내성의 성문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 내성과 외성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수구(水口), 많이 무너져 있습니다
▼ 약수샘터를 지나 동자암에 도착하면 무수한 돌탑들이 여기에 절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 국문영 별장의 영세불망비(별장은 성의 총 책임자)
▼ 마지막으로 강천사를 둘러보기 위해 강천산 군립공원에 들렸습니다. 병풍폭포는 인공폭포입니다
▼ 강천사 일주문 입니다
▼ 승려 덕현(德賢)이 1316년(고려 충숙왕 3년) 강천사를 중창할 때 화강암으로 만든 5층 6각의 다보탑으로,전북유형문화재 제92호입니다
▼ 산중턱에 부처님이 참선중이시군요
▼ 선운사의 말사인 강천사는 작고 번잡하지 않은 비구니의 수행도량이라고 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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