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부선 부산역을 알아보면, 산을 허물고, 바다를 매워서 땅을 만들고, 그 땅 위에 건물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곳이 부산중구이며 (구)부산정거장입니다.
1905년에 개통된 경성-부산 간 경부철도의 종착역은 초량정거장이었습니다. 초량은 왜관이 있었던 곳으로써, 왜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처음에는 경부선의 시종착역을 초량역까지만 하였으나, (구) 부산역 주위, 북항에 모여 살던 일본인들의 노선연장요구에 따라서 약 1.6km 아래의 부산항 1 부두옆에 신설역(부산정거장)을 짓고 경부선의 시. 종착역으로 하였습니다.
※ 사진자료는 부산시청 사진자료실, e-뮤지엄, 공유마당, 메가경제등에서 인용하였습니다
1905년 1월 1일 서울-초량 간 경부선이 처음 개통된 뒤 3년 만인 1908년 4월 1일 부산역에서 업무가 처음 시작됐는데, 그 당시 부산역은 임시 정거장 역할이었습니다만, 2년 반이 지난 1910년 10월 제대로 역사를 준공하고 업무에 들어갔습니다.
(구)부산역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
1908년 4월 1일: 경부선 초량~부산 간 개통과 함께 영업 개시 1910년 10월 1일: 역사 준공 1943년 12월 10일: 부산역(釜山驛)에서 부산부두역(釜山埠頭驛)으로 역명 변경 1945년 6월 10일: 부산역으로 역명 환원 1953년 11월 27일: 중구 대화재로 인해 역사 전소 1965년 11월 1일: 초량역, 부산역, 부산진역 3역을 부산진역으로 통합. 부산역 영업정지 1966년 4월 1일: 초량동 매립지에 역사 신축 착공(초량역이 아님) 1969년 6월 10일: 역사 신축 준공과 동시에 영업 재개 |
※ 일제강점기 전후 경부선 부산지역에는 3개의 정거장이 있었는데, 부산진역, 초량역,부산역(잔교역포함)입니다
▼ 1911년 경부선 부산진역(간이역)입니다
▼ 부산역을 알아보기 전에 초량역을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처음 경부선의 부산 종착역은 초량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경부선의 철도가 놓이기 전의 초량해안(1880년대로 추정)
▼ 경부선 철도가 초량에서 부산항까지 이어져 있는 모습으로 1908년 사진입니다. 해안을 보면,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서 해안을 매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 경부선열차가 부산정거장을 출발하여 초량을 지나고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면 높은 산이 보이는데, 영선산으로 보입니다만, 영선산 착평공사로 1909년~1912년 사이에 없어졌습니다.
▼ 초량역 부근의 모습으로 해안을 매립하고 철로를 깔았습니다.
▼ 부산 초량역을 출발하여 부산역으로 달리는 열차(1911년)
▼ 경부선 초기의 초량역사
▼ 일본군들이 초량역에서 군마와 건초더미를 화물차에 싣고 있습니다(1918년)
▼ 자료사진(메가경제)에서 보면, 바다를 메워서 항만, 철도, 공공청사등을 위한 커다란 토목공사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구) 부산정거장의 위치를 보면, 매립공사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부산항의 역사는 매립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부산항의 북항(북빈)과 남항(남빈)의 기점은 용미산을 기준으로 북쪽은 북빈(북항), 남쪽(자갈치시장)은 남빈(남항)이라고 하였습니다.(소나무가 있는 산이 용미산입니다)
사진에서 보면 1880년도에도 이미 일본인들의 집들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 1900년도에 북항에 수많은 일본인들이 모여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거주지역확보를 위한 매립공사는 1902년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 [손길신의 철길 따라④] 대한제국의 두 번째 철도 경부선 부설(하비엔뉴스)의 기사에서 보면 해안을 매립하고 제1부두(여객용), 제2부두(화물용,군사용)를 건설한 지도에 초량역과 부산역의 위치를 표시하였습니다.
▼ 부산항의 매립과정을 담은 사진을 연도별로 올렸습니다
- 일본은 경부선철도를 건설하기 전부터 부산항의 해안을 매립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과정을 알아보았습니다
※ 부산의 북빈(북항)은 개항 후 급증하는 일본인들의 새로운 생활 공간의 확보, 일본의 한국 지배를 위한 근거지 확보, 나아가 일제의 대륙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북빈 매축 공사(北濱埋築工事)가 시행되었는데, 경부선을 초량에서 부산항까지 연장하기 위한 매축계획 이전에 이미, 제1기 매축 공사는 1902년 7월 29일에 착공하여 1905년 2월 준공하였고, 제2기 공사는 1907년 4월 1일 착공해 1908년 8월 31일 준공하였습니다.
※ 제1기와 2기 공사에서 매축하여 얻은 토지는 약 13만 5777㎡[4만 1375평]이었다. 북항 매축지에는 항만 및 철도 시설을 비롯하여 우체국, 각종 회사가 들어섰고 도로망과 전차가 설치되었습니다.
※ 1905년 1월 1일 경부철도 초량역 개통식 및 초량~영등포 간 운수영업이 개시되었는데, (구) 부산역 주위에 살던 일본인들의 노선연장요구에 따라서 1905년 4월에 약 1.6km 아래의 부산항 부두(잔교) 옆에 신설역(부산역)을 신설하기로 하였습니다.
※ [손길신의 驛史(역사) 이야기 10화] 경부선개통 3년 후 추가된 부산역(메가경제)의 이력
- 1905년 4월 경부철도가 경성~초량 간 개통되자 약 1마일(1.6㎞) 정도 남쪽 거류지의 일본인들은 곧바로 경부철도 연장을 요구하였다.
- 1905년 6월 9일 : 초량역에서 부산구간의 바다매립공사 착수
- 1908년 3월 부산역 신축공사 착수
- 1908년 4월 1일 초량~부산 간 선로가 개통
- 1910년 10월 1일 부산역이 준공되어, 1층은 역무실, 2층은 부산역 호텔(1912년 7월 개업)로 개업.
※ 영선산 착평공사(營繕山鑿平工事)
부산북항초량역에서 부산항 사이에는 두 개의 산이 가로막혀 있어서 부산항의 일본인들이 원하는 두 일본인 집단거주지를 연결화는 데, 최대의 방해물인 두 개의 산이 있었는데, 영선산과, 영국영사관산(영국이 조차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래서 두개의 산을 허물어서 초량과 부산항을 연결하기로 하고, 산에서 나오는 돌과 흙으로 바다를 메워서 넓은 땅을 만든다는 공사를 하기로 하였는데, 영선산착평공사(營繕山鑿平工事)라고 하며, 또는 쌍산착평공사라고도 하였습니다.
※ 초량과 부산북빈(북항)까지 철도는 1908년에 연결되었지만, 영선산 착평공사는 부산정거장 완공 1년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 1909년 5월 쌍산(영선산, 영국영사관산)착평공사 시작
- 1912년 8월 쌍산 착평공사 완료( 4만 4천7백80평 확보)
▼ 쌍산 착평공사중이며 오른쪽은 영선산으로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으로서, 발파작업등으로 조선인, 일본인등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 쌍산착평공사중에 보이는 부산정거장이며, 왼쪽의 허물고 있는 산은 영선산으로 보입니다. 부산정거장은 쌍산착평공사 전에 준공되었습니다.
일본인들과 항만부대시설을 위한 토지확보를 위해서 매립공사는 일제강점기 내내 이루어졌습니다
▼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철도정거장을 운영하면서 열차를 이용한 관광사업도 하였는데, 철도호텔도 같이 운영하였습니다. 경성역의 철도호텔은 지금의 웨스턴조선호텔(구) 조선호텔이었습니다
▼ 부산정거장(중앙)과 부산세관(우측탑 건물)은 서구적인 건축양식으로 매우 특별하게 보이는 건물이었습니다. 부산세관과 부산정거장 건물사이에 승객들이 빠져 나오는 개찰구가 보입니다.
▼ 해안을 매립하고, 착평공사가 끝난 후에 각종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습니다(1920년대로 추정)
▼ 1953년 11월 큰 불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구) 서울역과 함께 남아서 아름다운 건축물로 남아 있었을 부산정거장 건물입니다.
부산정거장의 1층은 역사(驛舍), 2층은 철도호텔로 이용되었습니다.
▼ 부산정거장(우측)과 붙어있는 부산철도호텔(중앙부), 좌측은 공회당이라는 설명입니다
▼ 종착역인 부산역에 도착한 특급열차
▼ 부산정거장을 빠져나오는 승객들 모습이며, 대부분 일본인들입니다.
▼ 부산정거장의 승객들의 모습(1910년대)입니다.
▼ 경부선의 부산정거장에서 정차 중인 특급열차
※ 부산항 1 부두에는 철도가 잔교까지 연결되어 있었으며, 정거장은 잔교역이라고 하였습니다. 1910년 3월 28일 소인이 찍혀 있습니다.
▼ 제2부두(화물용, 군사용)에도 철도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 부산역은 1953년 11월 27일 중구 피난민 판자촌 일대에서 발생한 대화재로 부산정거장도 전소되어 부산정거장은 초량역 부근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역 앞 화재 전에는 부산국제시장에서 1953년 1월 30일에 큰 불이 나기도 했었습니다.(부산정거장이 골조만 남아 있는 모습입니다)
▼ 부산정거장이 화재로 역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자 초량동 방향 1km 정도 위로 이전(초량역이 아님)하여, 현재까지 부산역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1966년 4월에 임시역사를 허물고 새로운 부산역의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 1966년 4월 신축공사를 시작하여 1969년 6월 완공한 부산역(2기)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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