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만석거 가장자리에는 조선시대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영화정이라고 합니다. 보기에는 일반 정자라기 보다는 관청건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연을 벗삼던 나즈막한 정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영화정의 위치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361-1이며, 원래의 위치는 200미터 아래 수원미술전시관 근처였습니다.

 

▼ 만석거 주위에 조성된 만석거공원 숲속에 영화정이 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관청처럼 보입니다. 현재의 영화정은 1996년 10월에 새로 건립한 건물입니다.

 

▼ 화성성역의궤에서 영화정의 위치를 알아 보았습니다. 제방에 다리가 보이는데, 다리의 이름은 여의교입니다만,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정조가 화성행궁에 행차를 할 때 저 여의교를 건넜습니다

 

▼ 현재의 영화정과 (구)영화정터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였습니다.

 

▼ 영화정(迎華亭)에 대한 이력을 자료를 인용하여 자세히 알아봤습니다.(수원시 장안구청 홈페이지)

영화정은 정자동 만석거에 조성된 만석 공원에 있는 정자이다. 원래는 만석거의 남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옛날에 없어지고 만석공원을 조성하면서 원래의 위치에서 동북쪽으로 약 200m를 옮겨 복원시켰다.
『화성성역의궤』에 나와 있는 영화정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을묘년(1795) 가을 부터 물을 받아 호수를 베풀고 그 곳 남안(南岸) 위쪽에 하나의 정자를 세우니 맑고 깨끗한 물과 평평한 기름진 들판을 내려다 볼 수 있어 여기에 올라가 바라 보는 경치는 경기와 호남을 제 마음대로 할 만한 경치이다.
정자는 대략 8칸인 데 북쪽으로 세로로 2칸이 온돌이고, 남쪽으로 세로로 2칸은 포판인데, 3면과 온 돌 뒤쪽은 모두 퇴 를 반간씩 달고 하엽 난간으로 두르고 있다. 온돌 4면은 모두 쇄창 장자(쇄窓障子)를 들였다.
단확은 5토(土) 를 썼고 정자 서쪽에는 대문을 내고 남쪽으로는 작은 문을 냈는데 둘레는 네모꼴 단장이다. 병진년(1796) 행차시 영화정이란 편액을 달도록 했다(수원 유수 조심태가 글씨를 씀).'라 나와 있다.
영화정이 건립된 후 진목정에서 행해 지던 신구 유수끼리의 교구(交龜)의식은 이 곳으로 옮겨진 듯하다. 현재의 영화정은 만석거를 공원화하면서 1996년 10월 에 건립했는데, 8칸의 평면 구조를 하고 있으며 1고주(高柱) 5량(樑), 겹처마의 팔 작집으로 익공(翼工)이 없는'ㄱ'자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영화정은 수원화성 건축물 중에서 개방을 하지 않는 유일한(아마도?) 건축물로 보입니다. 건물이라는 것이 사람이 드나들지 않으면, 각종 벌레들과, 쥐들때문에 점점 허물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개방을 하지 않는 수원시(시설관리공단)의 애로 사항도 이해는 합니다만... 한마디로, 그냥 관리하기 귀찮은 거죠...

 

▼ 거대한 안내판 보호각을 봅니다만, 너무 큰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대한 보호각 때문에 앞에서 보는 건물의 멋은 많이 사라졋습니다. 

 

▼ 영화정이 옛날에 신,구 유수들의 업무교대식이 있었던 정자라고 하는데, 영화정이 지어지기 전에는 진목정에서 업무교대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보통 업무 교대식은 거북모양의 인장(印章)을 주고 받는것으로 이루어 지는데, 이러한 교대의식이 있었던 정자라고 해서 교구정(交龜亭)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아주 오래전에는 영화정이 있던 저수지 이름을 만석거라고 부르기 보다는 조기정방죽(교구정의 음변화)리라고 불렀습니다

 

▼ 유수 교대식에 주고 받던 거북 모양의 관인이 이런 모양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왕이나, 왕족이 쓰던 인장을 어보라고 하는데, 어보는 금으로 만들고, 관인 인장은 동으로 만들었을것으로 보입니다.(경향신문에서 캡처)

 

▼ 다행히 서쪽 담장은 낮아서 건물의 형태를 볼 수는 있습니다.

 

▼ 문은 두개이며, 동쪽은 담이 높아서 내부를 자세히 볼 수는 없습니다.

 

▼ 내부를 보면 잡풀이 가득 합니다. 풀이 많으면 벌레가 들끓어서 건물에 좋을것은 없을텐데, 차라리 내부에 잡돌을 깔아버리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영화정 주위가 숲속이기는 하지만 마땅하게 쉴 곳이 없기 때문에 건물을 관리하도록 매점을 열어 주고 영화정을 개방하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영화정터를 찾아서 수원미술전시관에 왔습니다. 지도에서 보면 (구)영화정터는 현재 수원미술전시관 주차장과 화단이라는 생각입니다. 송정초등학교 뒤 이며 도로에서 (구)영화정지 표지석이 보입니다

 

▼ (구)영화정터 옆에는 만석거 표지석이 보이는데, 원래의 표지석은 없어져서, 새로 세운 것입니다. 도로에서 보입니다

 

▼ 만석공원 제방 아래 공터에 북지상련이라는 시비가 있습니다.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처음 보는 시비 입니다. 시의 제목은 북지상련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북지(北池)라는 단어가 좀 이상하게 보입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만석거를 북지라고 하는 내용은 없고 다만, 화성 내부에 남지(南池)와 북지(北池)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만석거를 북지라고 하는것에 대한 검증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일제강점기때에 일본인들이 만석거에서 낚시를하면서 찍은 사진에 북지(北池)라는 내용이 있기는 합니다.

 

▼ 그럼 화성엉역의궤에서 북지(北池)와 남지(南池)는 어디인지 알아 봤습니다.

북지는 지금의 화성북단의 화서문과 장안문의 중간부위, 더 정확한 위치는 북포루와 북서포루 사이에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발굴조사만 하고, 그냥 흙으로 덮어 두었습니다. 

 

▼ 화성전도에서 북지의 위치와 모양을 그린 그림을 보면 북지의 형태를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북지는 화성 성곽을 축조 할 때 부족한 흙을 마련하기 위해서 땅을 파고 연못을 만들었으며, 물은 성곽밑에 만든 은구를 통해서 들여왔습니다.

 

▼ 그러면 남지(南池)는 어디인가 해서 지도에 남지터를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남지도 발굴조사후에 보존 상태로 있습니다. 팔달문 관광안내소 뒤에 있습니다.

 

▼ 화성성역의궤에는 남지의 형태를 알 수 있는 그림이 있는데, 남지는 성 안에서 생긴 물을 모아 두었다가 성곽 밖으로 내 보내는 은구가 있었습니다.  남지는 두개로 구분이 되어 있었네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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