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문화재.사찰/궁궐,행궁

창경궁(2)-경춘전,환경전,집복헌,통명전,양화당

바람. 2018. 4. 23. 16:51

창경궁은 왕이 정사를 돌보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생활 공간을 넓힐 목적으로 세워졌고, 또한 애초 궁궐로서 계획된 것이 아니라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살았던 수강궁에 몇몇 전각을 보태어 세운 궁궐이다보니 경복궁이나 창덕궁과 비교해볼 때 그 규모나 배치 등에 다른 점이 많습니다.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빈양문앞의 공터에서 낙선재의 담벼락 아래에 봄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어서 오랫동안 꽃구경을 하고 갑니다.

 

▼ 꽃나무 뒤로 보이는 경춘전입니다.

 

경춘전(景春殿)은 환경전 마당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건립 초기에는 대비들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왕비들이 이용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 함인전 바로 뒤에 있는 환경전입니다. 환경전은 임금이 창경궁에 오셨을 때 임금의 침전이나 편전으로 사용했습니다. 환경전은 1749년 영민하고 무예에도 출중했던 사도세자가 영조의 대리청정을 명 받은 곳입니다.

 

15세의 어린 나이였던 사도세자는 부디 대리청정 명을 거둬달라고 하소연 하였지만, 영조의 엄격한 제왕 훈련이 시작됩니다. 또한 중종은 이곳에서 탁월한 의술을 지닌 대장금의 치료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실록에 따르면, 대장금은 대비전과 중궁전에서도 진료를 하였고, 그 공로로 상을 받았습니다.

 

▼ 경춘전과 환경전이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데, 환경전보다는 규모가 작아 보입니다. 경춘전은 임금의 어머니인 대비와 왕비가 머물던 전각입니다. 처음에는 창경궁을 세운 성종의 생모 인수대비가 살았었고, 그 이후에도 인현왕후, 혜경궁 홍씨가 살았습니다.

 

경춘전은 정조가 탄생한 곳으로 유명합니다.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펼친지 3년이 된 해 용이 내려오는 태몽을 꿨다고 전해집니다. 사도세자는 용꿈을 꾼 기쁨을 남기기 위해 경춘전 내부 벽에 꿈속의 용을 그려 걸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 좌측에는 함인정, 정면에는 경춘전, 우측에는 환경전이 아주 가깝게 붙어 있습니다

 

▼ 환경전 뒷쪽으로 보면 한 건물처럼 보이는데 집복헌과 영춘헌입니다.

 

▼ 영춘헌은 집복헌 동쪽에 있는 작은 전각입니다. 정조가 임금이 되어 창경궁에 있을 때 살던 곳입니다. 정조는 궁핍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생각하며, 영춘헌 내부에는 사치스럽게 꾸미지 않고, 비가 새어도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정조는 재위 24년 6월 28일, 무더운 여름날 종기로 인한 병이 깊어 이곳에서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 집복헌에서는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가 영조11년(1735)에 사도세자를 낳았고,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는 이곳에서 순조를 낳았습니다. 사도세자의 출생은 영조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맏아들 효장세자는 이른 나이에 병으로 죽었고, 7년을 기다려 나이 마흔에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사도세자를 어린나이에는 무척 아끼었는데, 정치적으로 후계자인 세자가 되면서 너무 혹독하게 후계자를 만들다가 아까운 핏줄을 죽었습니다.

 

▼ 환경전 뒤에는 두개의 건물이 나란히 붙어 있는데, 앞쪽이 양화당이고, 뒷쪽이 통명전입니다.

 

▼ 통명전의 동쪽에 있는 전각입니다. 병자호란 때 항복한 인조는 삼전도에서 창경궁 양화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인조는 병이 깊어져 양화당에서 청나라 사신을 접견하거나 나랏일을 보았습니다. 중국의 사신을 접견할 때는 법전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나 인조는 주로 양화당에서 사신을 만났습니다.

 

 

▼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의 역할과 동시에 내외명부를 다스리는 업무를 보던 내전의 으뜸 건물 입니다. 역관의 딸이었다가 숙종의 후궁이 된 장희빈이 숙종의 두 번째 왕비인 인현왕후를 몰아내고 자신이 왕비가 되기 위해 취선당 서쪽에 신당을 차리고,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죽은 새나 쥐를 통명전 섬돌 아래에 묻었습니다.

 

그 무렵 인현왕후도 죽고, 장희빈도 죄가 들통나 사약을 먹고 죽습니다. 이후 숙종은 후궁을 왕비로 승격시키지 못하는 법을 만들도록 명합니다.

 

▼ 왕비의 침전인 통명전의 뒤의 정원입니다

 

▼ 통명전의 지붕을 보면 용마루가 없는데, 왕비의 침전이기 때문입니다.

 

▼ 통명전과 양화당을 보면 두 건물이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 통명전을 이리저리 담아 보았습니다.

 

▼ 내부에도 통명전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 통명전에서 서쪽으로 보면 계단 위에 작은 문 하나가 보이는데 함양문 이라고 하며 창경궁과 창덕궁간에 왕래가 가능한 문입니다.

 

 

- 창경궁(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