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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박물관-화성문화실

바람. 2023. 4. 23. 16:03

수원화성 박물관 2층(우측)에 있는 화성문화실에서는 정조의 화성행차와 군사 개혁의 핵심인 장용영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잔치를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화성에서 거행함으로써 드러냈던 부모에 대한 효, 왕조의 권위회복 그리고 애민정신을 살필 수 있습니다.

 

왕권강화를 위해 창설된 장용영 군사들의 무기와 무예, 서북공심돈에서의 가상전투 장면을 통해 수도 남쪽을 방어하는 수원화성의 위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화성박물관)

 

▼ 화성박물관 2층에 있는 화성문화실 입구 입니다. 양쪽으로 있는 해치는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모습인데, 화홍문에 있는 해치를 모작하여 설치하였습니다.

 

▼ 정조는 재위기간 동안 13번이나 현륭원 참배를 위하여 행차하였으며, 그중에서 1795년(을묘)은 8일간이나 화성행차를 하며 다양한 궁중연회와 행사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때 정조는 현륭원 참배와 함께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60세 환갑잔치를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개최하였고, 낙남헌에서 양로연을 베풀거나 과거시험을 보는 등 다양한 행사를 연이어 개최하였습니다.

 

1795년 정조의 화성행차와 봉수당 진찬연의 모습 그리고 화성성역의 총리대신이자 을묘년 원행의 총호사를 지낸 번암 채제공의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 을묘년 수원행차의 설명 그림인데, 잘 안보여서 자료그림으로 자세하게 보겠습니다.(내용은 그대로 옮겼습니다)

 

▼ 조선 최대의 국왕행렬, 1795년 수원행차

정조는 임금의 궁궐 밖 나들이인 행행(行幸,행차)을 자주 했는데, 재위 24년간 총 66회의 행차를 하였으며,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릉원 참배를 위해 수원 행차도 13회나 하였습니다. 이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추모와 어머니 혜경궁홍씨에 대한 효심의 실천이었습니다.

 

특히 1795년에는 정조의 재위 20년이 되는 해이자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회갑이 되는 해로써 왕실의 경사를 만백성과 함께 하고자 대규모의 행렬을 이끌고 수원으로 행차를 하였는데, 이를 통해 정조는 왕권의 건재함을 알리며, 자신의 친위세력과 백성들을 결집시키고자 하였습니다.

 

- 흰말이 정조가 탄 말이며, 왕의 형체는 안 그렸습니다.

- 사진자료:국립중앙박물관

 

을묘년 수원행차의 시작 돈화문출발

1795년 2월 9일(음), 정조와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창덕궁 돈화문을 출발하여 수원으로 향하였다.

이날부터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올 때까지 8일 동안 화려하면서도 의미 있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정조는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수원에서 어머니의 회갑잔치를 거행하므로써 부모님네 대한 효도를 다함과 동시에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민폐를 최소화 하여 왕실의 경사를 백성과 함께 나누고자 한 애민정신이 깃들어 있는 국왕의 행차였다

 

국왕의 위엄을 보여준 수원행차

을묘년 수원행차는 왕실여성을 포함한 왕족들과 정승, 판서등 신하들이 동원되었고, 궁녀와 호위군사들까지 대략 6,3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 엄청난 규모였다.

 

이처럼 대규모의 인원을 움질일 수 있는 재정능력, 그리고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과감하게 89일 동안 궁을 비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정조의 왕권이 얼마나 안정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795년 수원행차는 행차기간으로 보나, 동원된 인원수로 보더라도 그야말로 조선시대 최대의 국왕 행차였다.

 

- 가마는 혜경궁 홍씨가 타고 있습니다.
- 사진자료:국립중앙박물관

 

새로 만들어진 "시흥길"

1795년 이전에 수원화성으로 행차를 할 때에는 남태령을 넘어 과천을 경유했는데, 1795년 을묘년에는 고개가 적고, 평탄한 새로운 시흥길로 수원으로 행차를 하였습니다(자료: 인천일보)

수원행차의 최대 난제 한강 건너기

1795년 정조는 수원행차를 위해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강을 건널 수 있는 최고의 배다리를 만들것을 지시하였다.

 

당시 건설된 배다리의 설계과정은 '조교절목'과 '주교지남'을 통해 기록되었으며, 8일간의 수원행차를 그린 8폭의 병풍 중'한강주교환어도'로 남아 있다

 

배디리 건설에 사용된 배는 한강을 드나드는 경강선을 활용한 것이다.

 

이는 기존에 세곡이나 어물의 운송을 담당하던 배들에게 이권을 주고 행사 때에만 활용하여 비용절감을 한 것이다.

 

배다리는 배들을 가로로 엇갈린 형태로 배치한 다음 이들을 서로 연결하여 전체가 하나의 다리로 만들되, 가운데가 높은 홍예모양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때의 배다리 제작은 한강를 무대로 활동하는 상업용 선박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1795년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수원의 화성행궁에서 회갑연을 열었으며, 회갑연 다음날, 행궁의 신풍루 앞에서 수원부의 살기 어려운 주민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 안내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신풍루에서의 진휼
혜경궁 홍씨 회갑연 다음날 정조는 어머니의 은혜가 모든 백성에게 미치도록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다.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에서 사민(四民;홀아비,과부,고아,자녀 없는 노인)50명과 진민(賑民;가난한 사람)261명에게 쌀을 지급하였고, 이곳뿐만 아니라 산창(山倉),사창(社倉),해창(海倉)에서도 그렇게 하였다.

이로써 수원의 시민 539명, 진민 4813명에게 약368석의 쌀이 지급되었다.
이는 그 당시 약6만명의 수원 인구 중 약 10분의 1에게 혜택을 베푼 셈이다.
을묘년에 왕실에서 맞이하는 기쁨을 백성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정조의 마음이었다

 

※ 신풍루(新豊樓)는 화성행궁의 정문이며,  조선 정조 13년(1789)에 수원읍의 관청 건물을 세우면서 그 정문으로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진남루(鎭南樓)라 하다가, 1795년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면서 이름을 신풍루(新豊樓)로 바꿨습니다. 

 

※ 신풍루에서 쌀을 나누어 주는 행사를 보고 있는 정조를 그린 '신풍루사미도' 입니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화성능행도는 모두 8폭의 병풍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그린 사람은 김득신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료 그림으로 을묘년 화성행차의 모습을 보겠습니다.(자료그림:국립중앙박물관)

 

1폭) 〈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

화성에 온 첫날 정조는 공자 사당에 참배하였다. 공자의 사당은 지방마다 세워져 그 마을의 중심지이자 교육기관의 기능을 하였다. 그림에서 가장 위에 있는 건물이 공자의 사당인 대성전(大成殿)이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옆쪽에 정조의 자리가 있는데, 공자를 높이는 정조의 행위를 강조한 것이다. 대성전 아래에는 정조와 함께 의식에 참여할 특권을 얻은 향교의 유생들이 그려져 있고, 그림 하단에는 정조를 따라온 백관들이 대기하고 있다.

 

2폭) 〈낙남헌방방도(洛南軒放榜圖)〉

정조는 화성을 비롯한 인근 도시의 유생들에게 과거시험을 실시하고 합격자를 관리로 등용하였다. 과거시험은 3년에 한 번 서울에서 행해졌는데, 이 날은 화성과 인근 지역을 우대하는 행사로 공자 사당 참배 후 실시되었다. 그림은 합격자를 발표하는 의식으로, 낙남헌 안에 정조와 의식 집행자들이 위치하고 마당에는 급제한 자들이 관에 어사화를 꽂고 문반은 동쪽에, 무반은 서쪽에 늘어서있다.

 

3폭)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4폭) 〈낙남헌양로연도(洛南軒養老宴圖)〉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다음날, 정조는 서울에서 내려온 원로대신 15명과 화성에 거주하는 80세 이상 노인 384명을 초대해 잔치를 베풀었다. 행사가 벌어진 낙남헌에 정조를 중심으로 좌우 원로대신들이 앉아있고, 뜰에는 화성의 노인들이 직급과 나이의 서열에 따라 줄지어 동서로 나누어 섰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은 동서로 나누어 서지 않고 상하로 나누어져 있다. 상단의 인물들은 지팡이에 정조가 하사한 노란 비단 수건을 매달았기 때문에 잔치에 초대된 노인들이고, 하단은 지팡이가 없어 노인을 모시고 온 자손으로 추정한다.

 

5폭)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정조는 화성 성곽에 군사들을 배치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최신 군사 설비를 갖춘 성곽으로 계획된 화성은 1793년 신설한 왕의 친위 부대 장용영을 비롯한 5,000명의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 군사훈련은 그동안 키운 친위부대의 실력을 점검하는 한편, 최신식 무기와 실력으로 무장한 군사를 왕이 직접 지휘함으로써 한양에서 내려온 이들에게 왕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효과도 있었다. 화성의 성곽은 실제로는 이번 행사의 다음 해에 완성되었는데, 그림에는 이미 모두 완공된 상태로 그려졌다.

 

6폭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

 

※ 참고로 득중정의 위치를 화성행궁도에서 알아 보았습니다. 낙남헌 뒤쪽에 있습니다.

 

7폭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8폭)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


▼ 다음은 정조와 각별한 인연을 가진 분들의 초상화를 보겠습니다. 번암(樊巖) 채제공 선생의 초상화인데, 여러 모양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일호불사(一毫不似) ;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 엄청 세밀하게 그려야 진짜 초성화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 김후(金㷞)는 해풍 김씨로서 수원 출신의 무관이며, 화홍문, 방화수류정의 건축 당시 현장감독직을 수행하였습니다

 

▼ 허목(許穆)은 1596년 1월 10일(선조 28년) ~ 1682년 6월 2일 (향년 86세)(숙종 8년)의 문신인데, 정조 때 1794년에 그렸다면 허목이 죽은 112년 후에 그린 것이 됩니다. 허목이 82세 때의 밑바탕 초상화가 남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장용영대절목(壯勇營大節目)의 문제점을 아뢰는 전령(傳令)

 

▼ 원래 제목은 장용영대절목(壯勇營大節目)으로, 1793년 조선 후기 정조가 기존 5 군영 외에 별도로 왕권 강화를 위해 설치한 군영(軍營) ‘장용영((壯勇營)’의 연혁과 운영의 시행규칙을 정리한 규칙서입니다.

 

▼ 조선의 무기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장검과 환도, 방패등입니다

 

▼ 장용영((壯勇營)은 내영과 외영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외영에는 행궁을 수비하는 신풍위와 각 성문을 기준으로 화서위, 장안위, 창룡위, 팔달위로 총 5위가 화성을 지켰습니다.

 

▼ 화성을 지키는 장용영 대장의 의례용 복식을 보여 주고 있는데, 나름대로 위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조선의 조총에는 지금의 카빈과 같은 단조총이 있었네요!, 불랑기포는 그나마 조선에서는 최신의 포인데, 포탄을 포구에서 삽탄 하는 것이 아니라 자포(포탄집)를 꺼내어 삽탄하고 모포에 삽입, 고정하고 발사하는 포이지만, 포탄이 표적에 맞아도 터지지 않고 그냥 충격만 주는 쇠덩어리 포탄이어서 살상 능력은 크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군이 평양성을 공격할 때 활약한 포이기는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포의 중요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공격에 반격할 때 미국과 나토가 지원한 포의 반격에 러시아군이 크게 패배한 것만 봐도, 대포의 위력을 알 수 있습니다

 

▼ 서북공심돈(연무대 좌측에 있음)의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녹로 노(弩)로서 장거리용 화살입니다. 시위는 기구의 힘으로 당기고, 한꺼번에 여러 발이 발사됩니다.

 

▼ '엘리자베스키스'는 여류 화가이며, 국적은 영국으로서 1919년부터 한국(조선)을 자주 방문하였으며, 조선을 주제로 일본, 미국, 유렵등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조선을 사랑한 작가였습니다.

 

▼ 엘리자베스키스가 그린 이순신장군의 초상화(왼쪽)로 알려진 그림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지금의 현충사에 있는 장군의 초상화(오른쪽)보다 엘리자베스키스가 그린 초상화가 훨씬 무인에 가깝게 보입니다(자료는 뉴시스에서 인용),

 

▼ 노르베르트 베버신부도 조선을 사랑한 신부님이었습니다

 

▼  무예보통지에 실려 있는 무예 24기의 무술의 이름들이며, 예전에는 화성행궁 앞에서 무술시범이 있었는데, 지금은 공연이 잠시 중단이 된 듯합니다.

 

▼ 눈길을 끄는 신전(信箭)이라는 군사용 도구인데, 화살처럼 깃과 촉이 달려 있는데, 신(信) 자의 삼각깃발을 달고 있습니다. 촉은 령(令)가 성형된 금속을 달고 있는데, 군사 명령을 전달할 때 활로 쏘거나, 군사가 손에 들고 직접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 1907년~1908년 사이에 일본주재 독일대사관 정보장교였던 헤르만 산더와 동행한 일본인 사진사가 찍은 수원의 유리건판 사진이 다수 전시되어 있습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