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수강산 종주/백두대간의 꿈

백두대간36,37구간(도래기재-구룡산-화방재)

바람. 2016. 3. 15. 00:19

 

 

 오늘(2016년3월12일~13일)은 백두대간의 마지막 남은 구간을 채우면서 드디어 백두대간 전체구간의 종주를 끝내는 날입니다.

 

원칙적으로 하자면 진부령에서 졸업을 하는것이 맞지만 직업상 산악회 일정에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때 그때 산악회의 백두대간팀을 찾아서 일정을 맞추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행구간 순서에 맞지않게 구간을 하나하나씩 채워나갔는데, 드디어 종주를 마치는 그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백두대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7년만에 종주를 끝내는 기분은 이루 말할수없이 기쁜 날이기도 하고, 나의 인생에도 큰 보람이 있었던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종주 도전을 시작하는 처음이기도 하는 날이었습니다.

 

▼ 이번 산행은 경기하나산악회 대간12기 팀에서 마지막 대간구간을 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백두대간 종주에 많은 도움이된 경기하나산악회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무박2일로 산행을 하게 되었는데 , 이구간은 보통 차돌백이를 기준으로 2구간으로 나누어서 진행을 합니다. 문제는 차돌백이봉에서 접속거리가 너무 길다는 문제 때문에 2구간을 가끔 무박으로 이어서 종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10시간 정도 걸립니다)

 

▼ 도래기재에 새벽에 도착했습니다. 도래기재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와 춘양면 서벽리를 연결하는 고개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역(驛)이 있어서 도력마을이라고 했고, 이 고개를 도력현(道力峴)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점차 도래기재로 변음이 됬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역은 관리들의 이동수단인 말(馬)을 사육하고 관리하던 곳으로 멀리서 타고 오던 말을 바꾸어 타기도 하고, 숙식도 겸하던 곳이라 생각이 듭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고개가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로 잘못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 도의 경계는 도래기재에서 강원도 방향으로 6km의 거리에 있는 조제2교가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도경계가 됩니다 조제2교를 건너가면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내리입니다

 

▼ 도래기에서 구룡산 방향으로 출발합니다. 출발시간은 04시10분 입니다. 도래기재에서 화방재까지 24.3km이며 예상 시간은 10시간 입니다. 이날 백두대간은 봉화군 춘양면의 경계를 따라서 걷게 되는데, 춘양면은 춘양목이라는 적송이 유명한 지역입니다. 옛날 부터 춘양목은 궁궐을 짓거나 보수용으로 많이 쓰였다는데,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지금은 극히 일부 지역에만 적송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춘양면에는 문화재 보수용 적송을 특별관리하는 지역이 있답니다.

 

▼ 도래기에서 계속 오르막의 새벽산길을 걸어서 첫번째 도착한곳이 구룡산 입니다. 해발 1344m의 구룡산은 아홉마리의 용과 관련되어 지어진 산의 이름인데,  정상석이 마치 묘비석과 같아서 많이아쉽습니다. 그냥 자연적인 돌에 백두대간 구룡산이라고 새겨 놓았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쉬운 마음에 정상석에 백두대간이라고 새겨 넣었습니다

 

▼ 구룡산에서 계속 내려오다 보면 고직령에 도착하는데,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평천리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고직기재라고 불렸으며,자료에는 고직령(高直嶺)리라고 했으며, 조선시대 지형도에는 고칙령(高則嶺)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연두색의 자켓을 입으신분은 올해 나이가 72세라는데, 웬만한 젊은사람 못지 않으십니다.

 

▼ 고직령에서 출발하여 오르막 내리막길을 여러번 바꾸어 걷다 보면 곰넘이재에 도착합니다만, 뭐~ 특별하게 볼것이 없는 길입니다

 

▼ 옛날에 곰들이 넘어 다녔다는 곰넘이재에 도착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조선시대때는 곰들이 많아서 이런 고개를 넘어다니는 일들이 많았을것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조선시대때는 웅현(熊峴)이리라고 하다가 순화되면서 곰넘이재가 되었는데, 곰넘이재라는 이름이 훨씬 좋습니다. 밑으로 내려가면 참새골이라는 표시가 있는데,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것 같습니다.

 

▼ 다음으로 가야할 지점은 깃대배기봉입니다. 산길은 어느덧 조릿대길로 바뀌어 걷는데 삭막한 길을 걷는것 보다는 걷는 기분은 좀 다르게 느껴 집니다.

 

▼ 깃대배기봉이라는 이름은 원래에는 없었다가 일제시대때 일본놈들이 조선의 땅을 대대적으로 측량으로 조사하면서 깃발을 꼿았는데 이때 그냥 부르던 이름이 깃대배기봉이라고 불리어지게 됬다고 합니다(~~~휴), 뭐 다른 이름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일제시대때의 측량공들은 대부분 조선인이었는데, 그 위세가 대단하여, 많은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일단 측량대상에 포함되면 "동양척식주식회사"라는 회사에 땅을 뺏기게 되었는데, 일부 돈좀 있는 양반들이 측량공들에게 뒷돈을 대고, 측량대상에서 자신들의 땅을 제외시키기도 하였답니다.

 

▼ 첫번째 만나는 깃대배기봉을 지났는데 또 다른 깃대배기봉 표지석을 만났습니다. 어느것이 맍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산림청을 믿기로 합니다.

 

▼ 곰넘이재에서 부터 신선봉->차돌백이본->깃대배기봉->부쇠봉까지의 대간길은 참 힘든 구간입니다. 하지만 부쇠봉에 도착했다면 일단 앞으로의 길은 좀 수월한 길이라는 희망이 생깁니다. 부소봉, 또는 부쇠봉이라고 하는데, 저는 부소봉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단군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부루(扶婁), 부소(扶蘇), 부우(扶虞) , 부여(扶餘) 이렇게 4명의 아들중 부소의 이름을 빌어서 부소봉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되며, 부루는 주몽이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 부소봉 헬기장을 지나갑니다. 태백산의 천제단이 가까워지면서 진눈깨비가 많아집니다.

 

▼ 태백산 하면 단연 주목의 고사목입니다. 사진 실력이 형편없다보니 그냥 아무런 느낌이 없는 사진이 됬습니다.

 

▼ 산행중에 가장 아름답게 보였던 고사목입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인데...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나무란 말인가?

 

▼ 부소봉에서 천제단으로 가는길에 만나는 첫번째 천제단 입니다. 태백산에는 3개의 천제단이 있는데, 하단,천왕단,장군단등 이렇게 3개의 천제단이 있으며, 지금 이 천제단은 특별한 이름이 없어서 하단(下壇)이라고 하는데, 다른 자료에는 부소단(扶蘇壇)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태백산의 천왕단입니다. 천왕단? 처음 듣는것 같은데 천왕단은 태백산 3개의 천제단중에서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돌을 둥굴게 쌓아놓은 모양이며, 내부에는 한배검이라는 제단이 있습니다.

 

▼ 태백산 표지석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으려고 줄을 서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먼저 인증샷을 찍으려고 상스러운 말을 쏟아내는 놈도 있더군요

 

▼ 이제 실질적인 태백산의 정상인 장군봉으로 가면서 고사목을 감상하면서 갑니다.

 

▼ 장군봉에 왔습니다. 여기 장군봉 표지석에도 백두대간 장군봉이라고 했으면 하는 마음에 백두대간을 써 넣었습니다.

 

▼ 너무 오래 살아서 시멘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쓰러지게 생긴 고사목입니다. 그래도 저렇게라도 오래오래 봤으면 좋겠습니다.

 

▼ 유일사에서 장군봉으로 오르는길은 많이 힘든 길입니다만, 내려가는 길도 험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 유일사 방향으로 내려가는길에 이런 저런 주목 고사목을 보면서 내려 갑니다. 앞으로 얼마나 저런 멋진 고사목을 볼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100년이라도 더 오래 버티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유일사입구에서 이제는 사길령 방향으로 뽀송뽀송한 산죽길을 걸어갑니다.

 

▼ 사길령에 가까워지니 비로소 아늑한 숲속에 들어온듯 마음도 편안해지는듯 합니다.

 

▼ 태백산 산령각은 사길령을 오가며 장사를 하던 보부상들이 고갯길의 안전과 장사의 번성을 위해서 매년 음력4월 보름날에 제사를 지냈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보부상들이 없어지고, 고갯길도 왕래가 없어 폐쇄되었어도 태백시 혈리의 주민들이 산령각계(靈閣契)를 만들어서 그들이 남긴 재산을 관리하고 이에 의한 수익금과 신입회원들의 입회비로 산령각제를 매년 지냄으로써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 사길령의 유래를 새겨 넣은 설명인데, 옛날 신라시대때에는 경상도(봉화)도 통하는 길이 태백산 산마루로 통하는 천령이라는 길이 있었으나 천령이 높고 험하여 고려시대때 새로이 길을 내고 새길령이라고 하였다는 내용입니다.

 

▼ 새길령이 사길령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또한 그길의 기능을 화방재에 내어 주고 말았지만, 그 옛날의 무수한 보부상들이 다녔던 사길령의 이름은 아직도 건재 합니다. 백두대간과 함께...

 

▼ 사길령도 숲속길은 무척 가파른길이지만 겉으로 보는 사길령 숲은 평온하기만 합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