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21구간(늘재-조항산-밀재)
백두대간의 남한지역에서 중간 부분을 지나가는 조항산,그리고 맞은편의 대야산과 오른쪽 문경의 둔덕산의 계곡이 만들어낸 천하의 절경인 용추골이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괴산과 문경 지역은 무수히 많은 아름답고 산세가 아기자기하고 때로는 장쾌한 능선을 가지고 있는 명산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어서 사시사철 산을 찾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곳이다.
▼ 청화산을 지나면서 바라본 조항산, 산세가 우람하고 능선은 장쾌하다.그동안 내렸던 눈이 양지 바른곳은 눈이 대부분 녹았지만 능선에는 눈이 아직도 그래로다. 능선 저 너머 대야산의 중봉이 빼꼼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항산(鳥項山)이라는 한자는 새의 목이라는 말인데 그러면 어디가 머리인가?
▼ 늘재에서 부터 밀재까지의 대간구간을 다녀온 지도에 흔적을 그려 넣었다. 산악회의 5기대장이 나누어주는 고도및 거리 시간표는 참으로 보기 좋게 잘 만들어서 요긴하게 활용 한다. - 경기하나산악회(대간 5기), 전체거리는 약15km이며, 소요시간은 약 7시간이었다
▼ 늘재에 세워져 있는 백두대간비이다. 민족의 정기를 되찾는 뜻있는 표석인데 크기가 어마어마 하다. 우리나라의 큰 고개에는 어김없이 저 대간비가 세워져 있는데 앞으로도 대간길 곳곳레 세워질것으로 보인다. 표시석 아래에 써 있는 "늘재"자는 글자는 원래는 없었던 것을 누군가 펜으로 써 놓았는데 보기가 흐려서 포토 에디터로 추가 한것이다
▼ 늘재에 세워져 있는 분수령 표시판이며 낙동강,한강의 분수령이라고 써 있지만 사실은 금강도 포함되어야 하며,모든 강의 발원지는 백두대간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 내용을 보니 2008년 충북지방의 인재배출을 기대하고자 영동대학교의 학교법인에서 대간비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 백두대간비의 뒷면에 새겨진 시이며 속리산의 장엄함을 새겨 놓았다. 이 시를 쓴이는 조선시대 후기(철종)때의 문신이었던 백남 김시빈 선생으로써 아마도 백남문집에서 이 시를 꺼내서 새겨놓은것으로 보인다(백남문집은 1858년 철종때 간행되었다)
▼ 우측에 보이는 성황당을 보니 오래전의 기억속으로 되돌아 간듯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서낭당이라고도 했었는데...현세의 세속적인 종교보다는 그저 하늘과 땅의 신들께 고향과 가족의 무사안일을 기원했던 그 성황당... 오늘은 대간길을 무사히 걷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어 본다
▼ 보통 서낭당 이라고도 불리는 늘재의 백두대간 성황당의 유래비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두대간의 정기받은 영역 늘재에 당(堂)이 있으니 백두대간 성황당이다. 이 당은 원래 탑의 신앙과 산신신앙을 혼성한 서낭신앙에서 유래하여 신라 고구려 때는 횡액 질병을 막고 길손의 무사여행을 기원하는 소박한 민간 토속이었고 조선에 이르러 동제(洞祭)로 발전하여 오다가 잦은 국난을 당하면서 국태 민안을 위해 성황신을 백신(白神)의 장으로 모시고 관민이 신봉하는 전통신앙으로 승화되어 당(堂)도 지지(地誌)에 등재되어 왔다. 이러한 유서를 지닌 신당이므로 그 위치가 환경유적과 사실(史實)이 찬연하다. 이를 개관하면 이 늘재는 낙한(落漢)양대강의 분수령이다 강의 원류따라 개통된 도로는 동남으로 영호남 서북으로 충청도와 서울로 통하는 장정(長程)의 기점이며 고대에 라제(羅濟)의 국경으로 각축지대라 견훤산성이 축성되었고 근세에는 정기룡(鄭起龍)장군의 임란전첩지가 용화동에 있으며 세조대왕께서 백관과 함께 노니신 문장대와 용화 온천을 비롯하여 고승(高僧)과 명장이 수련한 흔적이 있다. 특히, 한말 경술국치후에 의사(義士)들이 창의 하고 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통로가 되고 쉼터이며 도창의 대강 이강년(李康秊)선생의 묘소가 지척에 있다 그리고 때맞추어 늘티에 전상석(全相錫)처사가 우국일념으로 이 성황당을 창건하여 동민과 함께 지성기도하여 지금에 이르렇다. 백여년이 지난 이제 그의 증손 충환(充煥)이 유지를 받들고 이상배(李相培)국회의원과 김근수(金瑾洙)상주시장이 산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당(堂)을 중창하여 선인들의 애국정신을 후세에 수범하고 후진의 교육장이 되게 하여 백두대간의 영기(靈氣)를 실감나게 하였다. 이에 그간의 유래와 성황당중창의 경위를 약기하여 비를 세워 영원히 기념하는 바이다.
▼ 늘재에서 조금 올라오니 저 멀리 갈령 방향이 조망된다. 갈령에서 늘재사이의 대간길은 속리산 주능선을 통과한다.
▼ 정국기원단(靖國祈願檀)은 늘재에서 약 30분 정도 올라오는 백두대간길에 설치되어 있다. 무심코 많은 사람들이 뜻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문으로 그대로 읽게되는데 그 뜻은 어지러운 나라를 잘 다스려 태평하게 해달라고 기원제를 지내는곳이라는 뜻일것이다. 하지만 靖國이라는 단어는 일본말로 읽으면 야스쿠니(やすくに)라고 발음 한다 . 우리가 그토록 증오하는 쪽바리의 야스쿠니(신사)인데, 그러면 이 비문은 야스쿠니기원단이라는 말인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시대 상황에 적절히 써야 좋을것이다. 이 정국기원단을 만든 사람은 이 지역에서 [지구촌 어머니 사랑동산]이라는 공원을 조성한다는 조회장이라는 분이라 한다.
※ 이날 찍은 사진과 인터넷에서 인용해온 야스쿠니 신사의 표시목의 사진을 비교해서 靖國(야스쿠니)라는 글자가 일본에서 쓰이는 현실을 비교해 봤다. 이 현실은 백두대간꾼이라면 꼭 거쳐가야하는 늘재에 이런것들이 있다는 사실과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역사적 혜안을 가지고 써야 한다는 것 이다.
▼ 전망이 좋은곳에서 백두대간인 속리산 능선을 한꺼번에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사실 속리산 주능선은 2번씩이나 다녀 왔지만 정식 대간 코스로 다녀오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다.
▼ 늘재에서 부터 청화산 까지의 능선길은 제법 경사도가 심한 힘든 코스다. 스틱에 의지해서 힘겹게 오르던중에 멀리 바라보니 청화산이 보인다. 능선길이 수월할것 같지만 의외로 빡세다.
▼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백운산이며 그 너머는 괴산지역이다
▼ 속리산 대간 능선을 전체로 담아 보았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철에는 위험한 구간이다.
▼ 헤이즈가 심하지만 금수강산 산하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다. 오른쪽은 청화산 정상으로 가는 방향이며 그리 멀지 않은곳에 정상이 이다.
▼ 청화산 정상 부근에서 바라보는 시루봉과 연엽산인데 나중에 지도를 보다가 봉우리 이름과 연엽산 이름을 알게 되었으며, 청화산에서 능선이 이어진다.
▼ 천왕봉을 당겨 봤는데 봉우리가 참으로 웅장하다. 또한 능선은 힘차게 뻗어나가 산세가 매우 험준하게 보인다.
▼ 조금만 더 가면 청화산 정상이며 청화산 부근에서 길을 헤메지 많게 지도를 다시 보고 길을 재촉해 본다.
▼ 백두대간길에서는 길의 방향을 잘 모를때는 일단 리본을 잘보면 금새 길을 찾는다.청화산 대간비를 넘어서 직진한다.
▼ 청화산 정상에 서니 앞으로 가야할 조항산과 그 옆의 둔덕산이 보인다. 조항산과 둔덕산사이의 능선에는 에는 기암 많아서 볼게 많은산이다
▼ 둔덕산은 문경지역에 속한 산이며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용추계곡으로 쏟아진다. 예전에 산행해본 기억이 있는데 생각보다 힘든 산이었다
▼ 조항산으로 가는 도중에 뒤돌아서 바라본 영엽산과 시루봉
▼ 더 가까이 다가선 둔덕산
▼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 능선이 한눈에 들어 오니 시야가 참으로 확 트이는 느낌이다.
▼ 새의 목덜미라는 뜻의 조항(산)인데 이제 새의 목덜미를 향해서 가야 하는데 능선 아래를 휘감는 임도는 아마도 갓바위재까지는 가는 모양이다
▼ 저기는 어딘가?
▼ 지나온 대간길이며 저 봉우리는 청화산 정상 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봉우리이며 895m봉이다. 삿갓재 까지는 거의 내리막길이다
▼ 삿갓재에 거의 다다를즈음에 바라보는 조항산, 한참 온것 같은데 아직도 멀었나?
▼ 전망 하기 참 좋은 넓은 바위
▼ 대야산은 내가 항상 기억하는 산인데, 그 이유는 등산이란것을 처음 할때 혼자서 올라본 봉우리이기 때문이며, 그 후에 백두대간이라는 말을 읇조릴때쯤 대야산을 좀더 관심있게 보게 되었다 하지만 대간길로 가본적은 없다.
▼ 좀더 자세히 조항산과 둔덕산을 바라보니 조항산은 앞면과 뒷면이 다르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대야산 쪽에서 보면 흙산처럼 보이는데 청화산쪽에서 보니 바위가 많은 산처럼 보인다.
▼ 조항산 정상에 가기전의 전망대 바위
▼ 저 아래 보이는 마을은 문경시 농암면의 궁기리이며,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신라시대)때 궁궐이 있었다는곳인듯 하다
▼ 전망대에서 올려다 본 조항산 정상 . 이렇게 보니까 새의 목덜미 비슷하기도 하다.
▼ 날씨는 썩 좋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좋았다.
▼ 눈만 아니었으면 아직도 늦가을 처럼 보이는 능선
▼ 조항산 정상에서 대야산 방향으로 뻗어내린 대간 능선길
▼ 대간길 저 멀리로 대야산이 보이니 반갑다.
▼ 조항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대 바위
▼ 백두대간 조항산 정상 표지석 왼쪽으로 전진
▼ 고모치 주변에는 채석장이나 광산이 몇개 있다 지금도 광산 채굴이나 채석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대간이 패여져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 드디어 고모치에 왔다. 고모치는 고모령이라고 해도 무방하나, 가요에서 부르는 고모령은 아니다. 대간길에 샘이 있는것은 흔하지 않은데 가까운 곳에 샘이 있다니 한 여름에는 대간길 산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꿀물을 선사 할것이다.
▼ 밀재를 가려면 한 차례 더 힘을 써야 한다. 바위 모양을 보니 점점 대야산이 그리워 진다.
▼ 지나온 고모치 방향
▼ 전망이 좋은 바위위에서 청화산과 조항산을 바라본다. 오늘도 꽤 먼거리를 종주 해온것이 가슴이 뿌듯 하다
▼ 한참을 바라보니 꿈틀거리듯한 능선길이 눈에 선하고 마음속에 새겨본 대간길의 봉우리들은 언제 또 밟아볼지 모르지만 항상 마음속에서 꺼내 볼것이다.
▼ 밀재에 도착해보니 날은 이미 어두어졌고, 예전에 있었던 이정표는 온데 간데 없다. 이 길로 가면 삼송리 방향이고 용추계곡은 반대로 간다.밀재에서 용추계곡 주차장까지는 꽤나 먼길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