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캐나다 전투기념비
캐나다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1950년 6월 30일 캐나다 총리였던 루이 생로랑(Louis St. Laurent)에 의하여 파병의 필요성을 의회에 전달하였으며, 캐나다 의회는 한국에 대한 파병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습니다.
캐나다군은 1950년 7월 30일부터 1953년 6.25 전쟁 휴전까지 총 26,791명이 파병되었는데, 한국전쟁에 전투병력을 파병완 16개국 중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군대를 파병하였으며,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한 4개 국가에 속합니다
인명 피해는 전투중 전사(516명), 부상(1,212명), 포로(32명), 실종(1명)등입니다
※ 자료사진은 대부분 캐나다 도서관 및 아카이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가평의 북면에서 가평읍내로 들어가는 길옆에 캐나다 전투기념비가 있습니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도 4월 23일에 가평 북면에서 중공군을 맞아서 영연방군(영국, 호주, 캐나다군)이 2박 3일 동안 방어전을 벌인 전투인데, 통칭 가평전투라고 하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입니다
▼ 지방도로 바로 옆에 캐나다 전투기념비가 있습니다. 먼 저쪽에는 미군 참전기념비가 있습니다.
▼ 캐나다군의 참전 규모 및 부대 편성
- 해군 : 1950년 7월 5일 / 아다바스칸(Athabaskan)호, 캐유가(Cayuga)호, 시욱스(Sioux)호로 구성된 구축함 3척 파병
- 공군 : 1950년 7월 21일 - 제 426항공수송대대 파병 및 공중전 경험이 있는 조종사 22명을 선발해 미 공군에 파견
- 육군 : 1950년 11월 25일 - PPCLI(Princess Patricia Canadian Light Infantry) 제2대대 파병(영연방 제27 여단 소속)
- 육군 : 1951년 5월 6일 - 캐나다 제25 여단 본대 파병하였으며, 차후 영연방 제1사단에 배속
▼ 캐나다 해군의 HMCS(His[Her] Majesty’s Canadian Ship) 카유가(218), 한국해역, 1950.
▼ 캐나다 해군의 프리깃함 HMCS Athabaskan (219)-1950년 7월 5일 에스키말트에서 출항하여 한국 해역에 대한 세 번의 임무 수행 중 첫 번째 순항하였고, 1953년 12월 11일에 캐나다에 돌아왔습니다
▼ 캐나다 해군 프리깃함 HMCS Sioux (R64) 1951년부터 1955년까지 세 차례 한국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하였습니다
▼ 1950년 9월 한국 파병 자원자들을 보고 있는 브룩 클랙스턴 당시 캐나다 국방부 장관.(가운데) 캐나다군을 비롯한 영연방군의 복장은 대개 비슷합니다. 사진 설명이 없으면 분간을 못 합니다.
▼ 1950년 11월 25일 마르티네즈호는 시애틀에서 파병군을 싣고 출항하여 한국의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 캐나다 공군은 6·25 전쟁 당시 미국에서 일본까지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당시 도쿄에서 화물을 내린 426 비행편대의 카나데어 CL-2 노스스타 Mk.I, RCAF(시리얼 번호 17511)입니다.
▼ 캐나다 공군은 직접 전투기를 파견하지는 않았지만 2차 대전 때 전투비행 경력이 있는 20명의 조종사를 미군에 파견하였습니다. 사진의 어니 글로버 캐나다 공군 중위는 한국전 동안 F-86 전투기를 몰며 총 3대의 적기를 격추해, 캐나다군과 미군으로부터 공중전 수훈 십자장을 받았고. 1991년 별세했습니다
▼ 캐나다 공군의 래리 스퍼 대위는 한국의 수원 기지에서 미 공군에 배속돼 1952년 중반까지 50회의 전투임무를 완수하고, 1대의 미그기를 격추시켰습니다.
▼ 캐나다 공군 간호사들은 미 공군, 해군 간호사들과 함께 앨라배마의 건터 공군기지에서 항공의료훈련을 받고 호놀룰루에 주둔한 1453 의무 항공 후송 대대에 배속됐습니다. 가운데 4명의 여군 복장이 캐나다군 간호장교인 듯합니다
▼ 캐나다군 전투기념비는 1975년 11월 7일에 유엔 한국참전국협회와 가평군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그 후 193년 12월 30일에 재 건립되었습니다.
▼ 1983년 12월에 건립된 캐나다군 전투기념비가 있는 주변은 나무숲으로 울창하게 가꾸어져 있습니다. 다른 참전국 기념비보다는 크지도 않지만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오른쪽의 붉은색 기념비는 2003년 7월 29일 캐나다에서 휴전 50주년 기념으로 세운 것입니다만, 비문이 잘 안 보입니다.
▼ 기념비는 단풍잎 모양으로 건립되었습니다.
▼ 패트리샤 공주 캐나다 경보병 여단 PPCLI(Princess Patricia Canadian Light Infantry) 제2대대의 1951.4.24~25 가평전투 기념비입니다. 캐나다는 2개 연대를 파병하였습니다.
▼ 가평전투 개념도입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캐나다군이 배치되어 있었고, 오른쪽에는 호주군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1951.4.23~25일 아침까지 중공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서 중공군을 무참히 패배시키고, 가평전투의 신화를 썼습니다
▲ 1951년 3월 순찰 중 PPCLI 제 2대대 캐나다 도서관 PA-115034(Library and Archives Canada)
▼ 1951년 3월, 패트리샤 왕녀의 캐나다 경비병 중대
▼ 개천을 건너서 전투배치 이동 중인 캐나다 보병
▼ 민가를 지나면서 주민들의 환영을 받는 캐나다군
▼ 한 겨울에 산속으로 들어가는 캐나다군
▼ 트럭에서 내려서 산으로 올라가는 캐나다군, 배낭 위에는 탄약이 가득합니다. 트럭의 모양이 특이합니다.
▼ 캐나다군의 비커스 기관총(Vickers machine gun), 영연방군이 대부분 운용하던 수냉식 기관총입니다. 영국이 맥심 기관총을 개조한 기관총인데 수냉식이라서 총신의 냉각에는 효과가 좋았으나 냉각방식이 증발식이어서 물이 별로 없던 고지에서는 좀 힘들었다고 합니다. 고정진지에서는 꽤 든든한 지원화기였다고 합니다. 1960년대 말까지 현역에서 뛰었으며, 물통은 4.5리터입니다. 아마 아직도 지구 구석에는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겁니다. 성능이 좋아서 인기가 엄청 좋았다고 합니다
제원은 구경(7.7㎜), 유효사거리(2,000m), 길이(109.2㎝), 무게(41.27㎏), 운용인원(6명)
▼ 보병 지원화기 박격포를 방렬하고 전투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한국전쟁에서 캐나다군의 최대 수훈으로 꼽히는 가평전투를 묘사한 그림. Holding at Kapyong, Edward Fenwick (Ted) Zuber 작품입니다.
▼ 가평전투 당시 캐나다 PPCLI 2대대 대대장 James R. Stone 중령, 적진을 바라보는 모습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 방어 중인 캐나다군의 모습인데, 아직은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 격렬한 전투를 느끼게 해주는 사진인데, 중공군과 전투라고 설명이 있습니다. 캐나다군의 보병 사진들을 보면 대체로 생동감이 느껴지는데, 사진병의 순발력이 꽤 좋은 듯합니다. 종군기자가 찍은 사진보다는 전투현장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 1951년 4월 가평전투 직후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하여 이동하는 캐나다군입니다. 소총은 리-엔필드 소총입니다.
▼ [자료사진] 영연방군의 표준 개인화기 리-엔필드 소총입니다.
▼ 전투 후에 정잘중인듯 합니다. 캐나다군도 소총은 리-엔필드 소총입니다. 리-엔필드 소총은 영연방군의 표준 화기였습니다.
▼ 캐나다군이 중공군과 전투에서 승리 후에 중공군의 무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보통은 중공군이 무기가 별로 없었는 줄 알았는데, 실제는 무장 상태가 꽤 좋았습니다.
▼ 캐나다군 히스 매튜 일병은 1952년 6월 야간 전투에서 얼굴 상처를 임고 지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 1951년 11월 어느 날 아침. 캐나다군은 장례를 위해 군인의 시신을 가져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엔진룸 위에 전사자의 시신이 있습니다. 고지전이 격렬해진 중부전선에서는 영국군이 유엔군 화장장 시설을 2곳에 운영을 했는데, 현재는 연천군에 하나만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 캐나다군의 셔먼 M4A3(76)W HVSS 탱크 캐서린, B Sqn, LdSH(RC), 1952년 7월 16일. 임진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 1953년 7 월 28일 , 캐나다 연대의 구역에 배치된 스트라스코나 호스 셔먼 경의 탱크, 고지전이 심해지면서 탱크가 산으로 올라가는 일이 보통이 되었습니다.
▼ 캐나다군의 Sherman M4A3(76)W HVSS 전차로서, 주한 캐나다 왕립기갑군단(RCAC), 제2기갑연대입니다
▼ 한국전쟁 참전 캐나다군의 참전 현황을 자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 캐나다 사람이라면, 전쟁 중이라고 해도 아이스하키는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캐나다군은 전쟁 소강상태에서 잠깐 짬을 내서 임진강에서 아이스하키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캐나다인들의 아이스하키 사랑은 전쟁 중에도 꼭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캐나다군은 2개 연대가 파병되었는데, 연대 간 대결이었습니다
- 1952년 3월 11일 임진강에서 열린 P.P.C.L.I(1대대)와 로열 22e(2대대) 연대의 하키 챔피언십 경기.
▼ 1952년 1월 임진강에서 열린 하키 경기 도중 선수들이 맞붙고 있습니다.
▼ 전쟁 중이었지만, 경기를 하는 캐나다군들은 엄청 재미있는 모습입니다.
- 끝 -